<청대소설사> 번역을 시작하며
중국의 소설은 시(詩)와 같은 정통문학에 비해 매우 하찮고 허무맹랑하며 잡다한 이야기로 여겨져왔다. 청대 말 소설계 혁명과 5.4운동을 거치며 비로소 하나의 명실상부한 문학 장르로 중국인들에게 인정받게 된다. 중국 소설의 뿌리를 찾자면 꽤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상고 시대 신화, 춘추전국시대 제자산문 속 우화와 <춘추좌전(春秋左傳)> 속 이야기들에서 시작하여 위진남북조 시대 발생한 ‘지괴(志怪)소설’을 거쳐 당나라 ‘전기 소설’은 작자에 의한 의도적인 허구적인 이야기라는 소설의 조건에 부합하는 문학 장르였다. 소설은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에 찬란한 꽃을 피운다. 하지만 국내에는 청대소설사를 다룬 책이 거의 없다. 내용이 방대해서일 수도 있지만, 개별 소설에만 관심을 가질 뿐 청대 전체의 소설 흐름을 아우르는 작업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 연재는 1998년에 출간된 장준(張俊)의 <청대소설사>를 번역한 것이다.
총론
숭정(崇禎) 17년(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그해 5월 만주 귀족이 세운 청나라가 중원에 들어서 선통(宣統) 3년(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까지 2세기 넘는 긴 세월 동안 존속했다. 청나라의 건국부터 쇠망까지는 중국 봉건 사회가 점차 해체되는 전환기이자 중국 고전 소설이 빛나는 결실을 맺는 시기였다. 노신(魯迅)은 《중국 소설사 변천(中國小說史變遷)》에서 소설사가의 시각으로 “청대 소설의 종류와 변화는 명나라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청대의 소설관은 명나라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명나라 사람들은 소설을 경사자집(經史子集)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유교적 도덕 질서 옹호”와 “권선징악” 등 사회적 효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명나라 중엽에 등장한 세태 소설 《금병매(金甁梅)》는 중국 고대 장편 소설 창작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었다. 이는 일부 비평가의 소설관에도 영향을 미쳐 비평 의식을 변화시키고 통속 소설 창작의 특정 특징과 규칙을 깨닫게 했다. 예를 들어 명나라 사람인 사조호(謝肇淲)는 《금병매 발문(金甁梅跋文)》에서 이 책이 작가가 “일상의 일을 채록하여 모아 편찬한 것”이라고 했다.
원중도(袁中道)는 《유거시록(遊居柿錄)》에서 “소소한 일상 속에 무한한 풍경이 담겨 있다”고 평했다. 청나라 사람인 장죽파(張竹坡) 역시 《제1기서 범례(第一奇書凡例)》에서 “소소한 일상 속에 큰 핵심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소설 유파와 차별화되는 《금병매》의 예술적 특징을 간파했다.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지어내던 소설 창작이 인생을 표현하고 인간의 삶과 세태를 묘사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은 문학관의 중요한 변화였다.
청나라의 일부 작가와 비평가는 이러한 변화를 비교적 명확하게 인식했다. 원호연수산인(鴛湖煙水散人)은 《진주박 서문(珍珠舶序文)》에서 소설 내용은 “모두 직접 보고 들은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허황된 공중누각과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설근(曹雪芹)은 소설 창작에서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고 더욱 강조했으며, 《홍루몽(紅樓夢)》은 서두에서 “만남과 헤어짐, 슬픔과 기쁨, 흥망성쇠의 운명은 모두 실제 사건을 추적하여 기록한 것이며, 함부로 꾸며내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려다 진실을 잃지 않도록 했다”고 명확히 밝혔다.
가경(嘉慶) 시대 나부거사(羅浮居士)의 《신루지서(蜃樓志序)》은 당시 및 명말청초 세태 소설 창작의 경험을 요약하여 비교적 명확한 소설관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내용과 형식에서 소설과 경사, 시문, 사부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소설의 특정 범위를 확정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부자 간의 일상적인 식사, 교류, 응대의 세세한 일들을 다루므로 ‘소(小)’라고 하고, 한 지역 남녀의 소소한 잡담을 다루므로 ‘설(說)’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장 쉽고 명료한 것이 소설의 정통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념은 실제로 소설이 통속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현실 사회의 평범한 인물과 일상생활을 묘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쉽고 명료하게 느끼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근대적 의미의 소설의 기본 특징과 비교적 부합하며, 청대 소설관의 중요한 발전이다. 이는 만청 견책(譴責) 소설 이론의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설 창작의 실제를 보면 청대 소설 창작은 명대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수많은 작품을 낳고 다양한 유파를 형성하여 별들이 빛을 다투는 번영의 국면을 이루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당나라 이전은 문언 소설의 시대였고,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3대는 백화 소설 창작이 소설사에서 주류를 이루었으며, 문언 소설은 쇠퇴하는 양상을 보였고 문채(文彩)와 풍운(風韻)은 예전만 못했다. 청대에 이르러 이 두 종류의 소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쟁하여 크게 발전했고 각자의 전성기에 도달했다. 수량으로 보면 장쑤성 사회과학원 명청 소설 연구 센터에서 편찬한 《중국 통속 소설 총목 제요(中國通俗小說總目提要)》에 따르면 청대 초기부터 청나라 말기까지의 장회 소설은 대략 330~340편 정도이고, 후충의(侯忠義)와 원행패(袁行霈)가 편찬한 《중국 문언 소설 서목(中國文言小說書目)》에 기록된 문언 소설은 총 500여 종에 달한다. 물론 그중 상당수의 작품은 역사적 고사나 일화들을 모아 놓거나 거짓을 가려내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같은 종류에 속하지만, 소설적 특징을 가진 작품은 명나라를 훨씬 능가한다. 의화본(擬話本) 소설은 손개제(孫楷第)의 《중국 통속 소설 서목(中國通俗小說書目)》과 호사영(胡士瑩)의 《화본 소설 개론(話本小說概論)》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청나라 사람이 편찬한 의화본 전문집과 선집은 거의 50종에 달한다. 장회 소설의 유파로 보면 역사 연의(演義)와 영웅 전기(傳奇)에는 《수당연의(隋唐演義)》, 《설악전전(說岳全傳)》, 《수호후전(水滸後傳)》 등이 있고, 인정(人情) 세태(世態) 소설에는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 《홍루몽(紅樓夢)》, 《기로등(歧路燈)》이 있고, 유림(儒林) 소설에는 《유림외사(儒林外史)》가 있으며, 잡가(雜家) 소설에는 《경화연(鏡花緣)》, 아녀(兒女) 영웅 소설에는 《야수폭언(野叟曝言)》, 재자가인(才子佳人) 소설에는 《옥교리(玉嬌梨)》, 《평산냉연(平山冷燕)》, 《호구전(好逑傳)》, 《금운교전(金雲翹傳)》, 협의(俠義) 공안(公案) 소설에는 《삼협오의(三俠五義)》, 협사(狹邪) 소설에는 《품화보감(品花寶鑑)》, 《해상화열전(海上花列傳)》 등이 있다. 다양한 유파가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다채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화본 소설의 성취는 비교적 미흡했지만, 《무성희(無聲戲)》와 《십이루(十二樓)》 등 신선하고 읽을 만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문언 소설로는 장편 소설 《음사(蟫史)》와 《연산외사(燕山外史)》가 있고, 단편 소설집으로는 당나라를 모방한 《요재지이(聊齋志異)》와 진나라를 모방한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가 있다. 그 후 전자의 필법을 모방한 《야담수록(夜譚隨錄)》, 《해탁(諧鐸)》, 《형창이초(螢窗異草)》, 《야우추등록(夜雨秋燈錄)》 등이 있고, 후자의 체제를 본받은 《인설헌수필(印雪軒隨筆)》, 《우대선관필기(右台仙館筆記)》 등이 있어 각기 다른 유파를 형성하며 백화가 만발했다.
창작 형식으로 보면 청대 소설은 대부분 문인의 독립적인 창작으로, 작가가 사회생활에 대해 느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작품의 현실감과 작가의 주체 의식은 명나라 소설보다 강화되었다. 명나라 장회 소설은 《금병매》를 제외하고 《삼국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은 모두 사료, 민간 전설, 희곡 등에 의존한 2차 창작이었다. 화본(話本) 소설도 민간 이야기의 본래 색을 많이 유지하고 있었지만, 천계(天啓), 숭정(崇禎) 연간에 쓰인 “이박(二拍)”은 장면이나 이미지를 만들 때 시대적 분위기가 풍부해, 창작이나 다름이 없었다. 청대 장회 소설은 대부분 옛날 평화, 전설과 같은 작품을 가공하거나 각색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자각적인 독립 창작이었다. 청나라 초기에 등장한 재자가인 소설은 예술적으로 미숙하고 거칠었지만, 문인의 독립 창작 풍토를 처음으로 열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후 독창적인 작품이 대량으로 등장했다. 조설근의 《홍루몽》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인 사상과 작법을 완전히 타파했다. 가경(嘉慶) 연간에 이여진(李汝珍)이 쓴 《경화연(鏡花緣)》은 더욱이 스스로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옛 틀을 완전히 뒤집어 작가의 자아 창조 의식을 강조했다. 작품에서 문인 작가의 주체 의식이 강화됨에 따라 많은 청대 소설은 예술적 완벽함을 추구하고, 전통 시가의 표현 기법을 의도적으로 빌려 작품이 신선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드러냈으며, 저속한 묘사를 줄여 명나라 소설과는 다른 풍모를 보여주었다. 《수당연의(隋唐演義)》, 《수호후전(水滸後傳)》과 같은 일부 역사 연의와 영웅 전기도 사료와 옛 작품에 의존하고 참고하긴 했지만, 작가는 자신의 생활 경험에 따라 제재를 선택하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인물을 묘사하여 예술적으로 일정 정도 혁신을 이루었다. 또한 《취성석(醉醒石)》, 《십이루(十二樓)》, 《두붕한화(豆棚閒話)》와 같은 화본 소설도 서사 체제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창작 경향에서 청대 소설은 짙은 비극 의식을 많이 드러냈다. 청나라 초기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부터 청나라 중엽의 현실에 대한 집중, 청나라 말기의 미래에 대한 탐색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이 이러한 비장하고 슬픈 감정에 휩싸여 있다. 포송령(蒲松齡)은 자신의 《요재지이(聊齋志異)》가 ‘고분(孤憤)’을 토로하는 책이라고 밝혔다. 오경재(吳敬梓)는 세상이 옛날과 다르다고 한탄하며 상고(上古)시대 ‘예악병농(禮樂兵農)’의 이상을 추구하며 《유림외사(儒林外史)》에서 비참한 유림의 세태를 그렸다. 조설근은 세상의 냉담함과 인간관계의 각박함을 한탄하며 《홍루몽》에서 봉건시대 “말세(末世)”의 만가(挽歌)를 불렀다. 진침(陳忱)은 《수호후전》에서 격분한 감정을 썼고, 오훤(吳璿)은 《비룡전전(飛龍全傳)》에서 울적한 생각을 담았으며, 황내암(黃耐庵)은 《영남일사(嶺南逸史)》에서 자유분방한 기운을 풀어냈는데, 이들 모두 비분강개하고 슬픈 감정을 담고 있다. 특히 많은 작품의 결말에서 현실 모순이 해결될 수 없고 마음속 울분이 해소될 수 없기에 인생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적 격변 직전의 시대적 정서였다. 소설뿐만 아니라 《도화선(桃花扇)》, 《장생전(長生殿)》과 같은 일부 희곡 작품도 이러한 비극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역사적 환경의 영향과 제약, 그리고 소설 자체의 발전 상황에 따라 우리는 청대 소설을 네 시기로 나눈다. 첫째, 명청 교체기로 명나라 숭정(崇禎)과 청나라 순치(順治) 두 왕조를 포함하여 총 33년이다. 이 시기는 명청 교체기이자 청대 소설이 변화하는 시기이다. 둘째, 청나라 전기(清代前期)로 강희(康熙)와 옹정(雍正) 두 왕조를 포함하여 총 73년이다. 이 시기는 청나라가 건국되고 점차 공고해지는 시기이자 청대 소설이 전대의 기반 위에서 계속 발전하는 시기이다. 셋째, 청나라 중엽(清代中葉)으로 소위 ‘건륭가경(乾隆嘉慶) 성세(盛世)’부터 도광(道光) 전기까지 총 103년이다. 이 시기는 청나라가 번성하다가 쇠퇴하는 시기이자 청대 소설의 전성기이다. 넷째, 청나라 후기(清代後期)로 도광 20년(1840년) 아편 전쟁부터 광서(光緖) 24년(1898년) 무술변법(戊戌變法)까지 총 58년이다. 이 시기는 청나라가 쇠망하는 시기이자 중국 고전 소설의 종결 시기이다. 과거 일부 문학사 저서는 아편 전쟁을 중국 고대와 근대 시가, 희곡, 소설사 구분의 경계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샤오샹카이(蕭相愷)의 《중국 소설의 근대화 – 고대 근대 소설사 분계선 시론(中國小說的近代化 – 試論古近代小說史的分界)》에서는 경자국변 이후 중국 소설이 진정으로 새로운 역사 시기, 즉 진정으로 근대화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고대 근대 중국 소설사 간의 경계선은 1900년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는 중국 소설 발전의 실제와 비교적 부합하며, 본서는 이러한 시기 구분을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