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소설사] 명청 교체기의 소설(6) – 세정소설

세정소설 1005 962

제5절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과 세정소설

세정소설(世情小說)은 ‘인정소설(人情小說)’이라고도 하며, 그 내용은 주로 세속 사회와 일상생활을 다루고, 인간관계와 세태의 변화무쌍함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장르의 발전은 역사연의소설이나 신마괴이소설보다는 뒤에 이루어졌다. 만력(萬曆) 연간(일설에는 가정(嘉靖) 연간)에 집필된 《금병매(金瓶梅)》는 세정소설의 기초를 다진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노신(魯迅)은 《소설사대략(小說史大略)》에서 “인정소설은 당대에 싹텄으며, 명대에 이르러 점차 자라났고, 청대에 이르러 《홍루몽(紅樓夢)》이 등장함으로써 독자적인 흐름으로 모든 인정소설을 뛰어넘었다”고 평하였다. 명청 교체기의 인정소설은 바로 이 《금병매》와 《홍루몽》이라는 두 개의 높은 봉우리 사이에 위치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금병매》의 문체와 기법을 배우거나 모방하거나 새롭게 창조하면서, 어렵고 굽은 길을 걸으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1) 명청 교체기 세정소설의 분화와 유형

명대 중엽 이후, 세정소설은 활발하게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장편으로는 《금병매》가 대표작이고, 중편으로는 《고장절진(鼓掌絕塵)》, 단편으로는 《삼언(三言)》과 《이박(二拍)》 속 일부 작품들이 있다. 이 가운데 화본소설(話本小說)은 장회체 세정소설과 체제는 다르지만, ‘눈앞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한 정신 면에서는 공통점을 지녔다. 명말의 소설가 소화주인(笑花主人)은 《금고기관서(今古奇觀序)》에서 《삼언》의 창작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인간의 인정과 세태의 복잡한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이별과 만남의 감정을 풍부하게 그려냈으니, 독창성과 참신함이 돋보이며, 사람의 마음과 감각에 깊이 파고든다고 말할 만하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혹은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혹은 개인의 출세와 몰락을 그렸으며, 혹은 젊은 남녀의 사랑과 혼인을 중심으로 이별과 기쁨, 슬픔을 서술하였다. 인간사와 세태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한편, 인과응보의 개념을 곁들여, 첫 세정소설 창작 열풍을 일으켰다.
숭정(崇禎)·순치(順治) 연간에 이르러서는, 《금병매》의 커다란 영향 아래 몇몇 작가들이 그 핵심을 파악하거나 혹은 외형만 흉내 내면서, 내용의 분화와 장르의 파생이 시작되었다. 어떤 작품들은 도리어 더욱 노골적으로 흐르며, 아름다운 정사와 외설적 성애, 침실에서의 육욕을 주제로 삼아 《금병매》가 지닌 문학적 정취는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음란소설의 한 갈래를 이루었다. 이런 작품들은 《금병매》의 나쁜 부분만 흉내 내어 퍼뜨린 해로운 영향이며, 루쉰은 이를 인정소설의 가장 타락한 형태(末流)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부 작품은 《금병매》의 ‘권선징악’이라는 의도를 발전시켜, 인과응보를 중시하고, ‘음란함으로 음란함을 막는다’는 방식으로 세속을 경계하고 훈계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음란의 외피를 두른 ‘보응소설(報應小說)’로 성격이 바뀌기도 했다. 또 어떤 작품들은 재자(才子)와 가인(佳人)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제목도 《금병매》의 명칭을 따랐으나, 등장인물과 줄거리 등은 크게 달랐다. 이러한 작품들이 워낙 많이 창작되면서, 내용은 점차 진부해졌고, 형식은 상투화되었다. 반면 인간사의 진실하고 정밀한 묘사는 점점 약화되었다. 이에 대해 노신은, 이러한 경향을 《금병매》를 흉내 낸 또 하나의 ‘이류(異流)’라 평하였다. 《금병매(金瓶梅)》의 전통을 진정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희로애락과 개인의 출세·몰락 과정을 묘사한 일부 작품들이었다. 숭정(崇禎)부터 순치(順治) 연간 사이에 이와 같은 유형의 소설은 약 다섯 종이 있으며, 그 대표작이 바로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이다.
이 다섯 편의 작품은 대체로 다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전작을 잇거나 보충한 속편류(續補前書類)

대표적인 작품은 《속금병매(續金瓶梅)》이다. 《금병매》를 계승한 가장 이른 시기의 속편은 만력(萬曆) 연간의 《옥교리(玉嬌李)》로, 현재는 원본이 전하지 않는다. 심덕부(沈德符)의 《만력야획편(萬曆野獲編)》 권25에 따르면, 이 작품 역시 “가정(嘉靖) 연간 명사(名士)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원중랑(袁中郎)은 이 책에 대해 “전편과 함께 보응과 인과관계를 설정하여, 윤회의 확실성을 보여주었다”고 평하였다. 반면 심덕부는 “명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은밀히 암시하며, 심지어 가정 신축년 과거에 급제한 여러 관원의 실명을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고 지적하였다. 황림(黃霖)은 《금병매 속편 삼종 전언(金瓶梅續書三種前言)》에서 “《속금병매》의 창작은 직접적으로 《옥교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라고 보았다.
《속금병매》는 전집과 후집으로 나뉘며, 전체 12권 64회로 구성되어 있다. 순치 17년(1660)에 간행된 초판본에는 저자가 ‘자양도인(紫陽道人)’, 평자는 ‘호상조수(湖上釣叟)’로 되어 있으며, 책의 서두에는 범례 8조가 실려 있다. 이 자양도인은 곧 정요항(丁耀亢)으로, 만력 27년(1599)에 출생하여 강희 9년(1670)에 사망하였다. 자는 서생(西生), 호는 야학(野鶴)이며, 산동 제성(諸城) 출신이다. 건륭 연간에 간행된 《제성현지(諸城縣志)》 문원편에 따르면, 그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고, 특이한 재능을 지녔으며, 기질이 호방하고 자유로웠다. 약관의 나이에 생원이 되었으며, 강남 지방으로 유람하며 동기창(董其昌)의 문하에 출입하였다”고 한다. “귀향한 뒤에는 뜻을 펼 수 없어 우울한 나날을 보냈으며, 역대 길흉화복을 분류한 《천사(天史)》 10권을 저술하였다.”
그는 순치 4년(1647) 경에 북경에 들어가 발공(拔貢) 청대(淸代)의 제도로서, 일종의 관리 등용 시험을 통해 양백기(鑲白旗) 교관에 임명되었고, 이 시기에 다수의 고관대작들과 교유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순치 11년(1654)에는 용성현(容城縣)의 교유(教諭) 중국 고대의 한 현의 교육을 주관하던 관원1으로 부임하였고, 5년 뒤에는 혜안현(惠安縣)의 지현(知縣)으로 승진하였다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돌아갔다.
그의 저술은 매우 풍부하여, 이 《속금병매》 외에도 《정야학유고(丁野鶴遺稿)》, 《천사(天史)》, 전기 작품인 《서호선(西湖扇)》, 《화인유(化人游)》 등이 있다. 정요항은 명청 교체기를 직접 체험하며 난세의 참상을 목격하였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불만과 감정이 그의 문학 속에 자주 표출되었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은 그에 대해 “어릴 적에 재주를 갖췄고, 장성한 뒤에는 변란을 겪으며 떠돌고 유랑하였다”고 하였고, 《정야학시초(丁野鶴詩鈔)》에는 “애끓는 감정이 많은 시구가 실려 있다”고 평하였다. 《청대금서총목(清代禁書總目)》 역시 그의 시집 《소요유(逍遙遊)》를 두고 “그 가운데 거슬리는 표현이 매우 많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불만의 정서는 《속금병매》의 서사와 문체 전반에도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소설은 순치(順治) 17년, 저자가 항주(杭州)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은 《금병매(金瓶梅)》 제100회의 서사를 잇는 형식으로 집필되었으며, 두 개의 주요 줄거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하나는 본선(本線)으로서, 원작에서 살아남은 오월랑(吳月娘), 효가(孝哥), 대안(玳安), 소옥(小玉) 등의 이합집산을 그렸고, 다른 하나는 부선(副線)으로서, 서문경(西門慶), 이병아(李瓶兒), 반금련(潘金蓮) 등 사망한 인물들의 윤회 보응을 다루었다. 두 줄거리는 교차하여 발전했으며, 이 가운데 송휘종(宋徽宗), 장방창(張邦昌), 진회(秦檜), 종택(宗澤), 한세충(韓世忠) 등 역사 인물들의 이야기도 삽입되었다.
비록 이 속편의 사상성과 예술성은 《금병매》 본편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의 의미와 독창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우선, 작품의 창작 의도는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을 해설하기 위해 집필되었으며, 인과응보를 주제로 삼아 악을 경계하고 선을 권장하고자 하였다. 소설 제62회에는 “오늘날 책을 짓는 것은 《감응편》을 본받아 한 편의 소설로 세상을 권면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명시하였다. 또한 《서호조사서(西湖釣史序)》에서도 “저자는 ‘지금 황제가 세상에 반포한 《태상감응편》의 뜻을 따르기 위해, 《(속)금병매》를 그 경전의 내용을 소설로 풀어 설명하는 책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작자는 이러한 구상에 따라 인물들의 운명을 배치하였다.
작품의 본선은 금나라 군대의 침입으로 천하가 대혼란에 빠진 상황을 배경으로 하였다. 오월랑은 아들 효가, 대안 등과 함께 난을 피해 떠돌아다니며 갖은 고난을 겪은 끝에 모자(母子)가 모두 출가하고, 마침내 청하(淸河)로 돌아가 가업을 재건하여 평온한 결말을 맞이한다.
한편 부선은 서문경이 금가(金哥)라는 부잣집 아들로 환생하고, 이병아는 지휘관 집안 딸인 상저(常姐)로 환생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상저는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이사사(李師師)에게 속아 기녀가 되고, 변경(汴京)이 함락되자 금가는 거지가 되고 만다. 상저는 적원외(翟員外)에게 시집가나, 외간 남자와 사통하여 도주하다가 자살한다.
춘매(春梅)는 천호(千戶) 집안 딸 매옥(梅玉)으로 다시 태어나 금가에게 시집가나, 주부인 손설아(孫雪娥)가 환생한 여자가 갖은 학대를 가한다. 매옥은 인과응보를 깨닫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다. 반금련은 산동 지역 지휘관 집안 딸 금계(金桂)로 환생하여 매옥과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나, 훗날 절름발이 유(劉, 곧 진경제(陳敬濟) 환생자)와 혼인한다. 유는 신체가 불구였으며, 금계는 사욕에 빠져 악업을 쌓다가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어, 역시 출가하고 만다.
작품은 이처럼 등장인물 각각의 윤회와 결말을 통해 권선징악의 주제를 명확히 드러냈다. 소설 권말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모든 나쁜 일은 하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은 부지런히 실천하라. …… 내가 지금 《속금병매》를 지은 이유는 결국 이 여덟 글자(諸惡莫作, 衆善奉行)에 다 담겼다. 세상 사람들이 이를 깨닫기를 바라며, 이는 곧 지금 상국이 반포한 《감응편》과 《권선록(勸善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금병매》의 주제와도 일정 부분 상통한다. 그러나 특히 속편에서는 ‘음욕’에 대한 징벌을 더욱 강조하였다. 작품은 이른바 ‘음근경중(淫根輕重)’에 따라 매옥과 금계의 결혼과 운명을 배치하여, 생전 음욕을 일삼은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반대로 금병(錦屏)과 효가의 혼인처럼, 색욕을 절제하고 경전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부부를 묘사하여 뚜렷한 대조를 이루게 하였다.
《금병매》가 ‘색정’(色情)을 드러내는 데 치중했던 것과 달리, 《속금병매》는 ‘공(空)’의 경지로 나아가려는 의도를 보였다. 이 점은 제43회에서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금병매》 한 부는 ‘색’ 자 하나를 말했고, 《속금병매》 한 부는 ‘공’ 자 하나를 말했다. 색을 통해 공으로 나아가고, 공이 곧 색임을 깨닫는 것, 즉 인과응보가 불법(佛法)으로 전환하는 이치가 이 책을 쓴 본뜻이다.”
다음으로, 이 속편은 단순히 인과응보와 선종(禪宗) 사상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서호조사서(西湖釣史序)》에서 지적했듯이, 작품은 또한 “환상적인 방식으로 나라와 세상의 격동하는 현실을 담아내어” “군신(君臣)과 가국(家國)”, “규방 여인과 하인”이 겪는 전쟁과 이합집산,그리고 시대의 변천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서술은 진침(陳忱)이 지은 《수호후전(水滸後傳)》과 비견된다. 작자는 당시의 혼란한 정국에 대한 깊은 우려와 멸망한 옛 나라에 대한 비통함을 담아냈다. 《금병매(金瓶梅)》와 비교하면, 이 책은 정치적 색채가 훨씬 더 짙어졌다.
저자는 음란한 풍속과 악습의 근원이 조정의 부패에 있다고 인식하였다. 그는 《태상감응편음양무자해서(太上感應篇陰陽無字解序)》에서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상일은 사람에게 맡겨지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세상일은 신명(神明)에게 맡겨진다”고 하였다. 소설 제34회에서는 사회 풍속을 도의(道義), 기강(紀綱), 치란(治亂)과 연결 지어 서술하며, 풍속이 타락하면 필연적으로 “기강이 무너지고 국가가 멸망한다”고 보았다. 제58회에서는 더욱 명확하게 작가의 창작 의도를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상의 풍속이 정숙한지 음란한지, 중생이 고통을 받는지 즐거움을 누리는지는 결국 모두 조정의 사대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쓴 간절한 뜻이다.”
바로 이러한 인식 때문에, 작품은 북송 황제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의 방탕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폭로하고, 권신 채경(蔡京), 왕보(王黼), 양전(楊戩), 고구(高俅), 동관(童貫), 왕백언(汪伯彦), 황잠선(黃潛善) 등의 아첨과 국정 파탄을 통렬히 비판하였으며, 매국노 장방창(張邦昌), 유예(劉豫), 진회(秦檜) 등이 나라를 팔아넘겨 부귀영화를 추구한 일을 신랄하게 질타하였다. 아울러 종택(宗澤), 악비(岳飛), 한세충(韓世忠) 등 금나라에 맞서 싸운 충신 장군들을 열렬히 찬양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작품의 본 줄거리인 오월랑과 서문경 일가의 서사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주제를 벗어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곧 전체 서사에서 “현자를 칭송하고 간신을 꾸짖는” 중요한 축을 이루며, 작가의 뚜렷한 애증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작품은 구체적으로 금병(金兵)이 침입하여 도시를 함락하고 백성을 학살하고 약탈하는 끔찍한 만행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금병이 변경(汴京)을 점령하고, 연동(兖東)을 유린하며, 양주(揚州)를 학살할 때, “백성의 시신이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처럼 흐르며, 거리마다 시체가 가득했다”고 표현하였다. 또 “가정은 파괴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서술하여, 그 참혹함을 생생히 전달하였다.
이러한 서술은 자연히 청나라 초기 청군이 벌인 도시 학살과 강제 점령의 만행을 연상시키게 하였다. 작품은 금나라 병사를 ‘북방 오랑캐(北方鞑子)’라 노골적으로 부르기도 했다. 송나라의 관제에 대해 명나라 때 사용된 ‘창위(廠衛)’, ‘금의위(錦衣衛)’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한편 금나라 군제에 대해서는 청나라 군대 체제인 ‘기하(旗下)’, ‘남기영(藍旗營)’ 등으로 표현하여, 의도적으로 송금 전쟁의 역사를 빌려 명청 교체기의 현실을 빗대어 표현하였다. 이는 작가가 망국에 대한 회한을 문학적으로 토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평보청(平步靑)은 《하외군설(霞外捃屑)》 권9에서 《속금병매(續金瓶梅)》를 두고 “그 뜻은 새 왕조를 풍자하고, 망국에 대한 통한을 토로하려는 데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것이 바로 속편이 본편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본서의 범례에서도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전집(본편)은 오로지 서문경(西門慶) 일가의 부녀자들이 술과 색정, 음식과 농담을 즐기는 일상적인 이야기에만 머물렀고, 간혹 채경(蔡京)과 양제독(楊提督)이 상소를 올리는 장면이 조금 나올 뿐이다. 마지막 즈음에야 금나라 군대가 침입해 주수비(周守備)를 죽이고, 산동 지역이 어지럽게 되었다. 그러나 속편은 처음부터 나라가 대혼란에 빠지는 상황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북송에서 남송으로 넘어가는 역사적 사건을 시작으로, 왕과 신하들 사이의 충성, 아첨, 정절, 음탕함과 관련된 큰 사건들을 덧붙여 묘사했다. 마치 작은 물결에도 큰 파도가 일고, 작은 언덕에도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혼란한 시대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을 경계하고자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다만, 작품은 이사사(李師師)의 이익만 좇는 행위, 정옥경(鄭玉卿)의 탐욕과 색욕, 묘청(苗青)의 투항과 영달 추구, 매옥(梅玉)과 금계(金桂)의 비굴한 삶을 묘사하면서, 난세에 각양각색으로 변모하는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이러한 점에서는 여전히 《금병매》와 유사한 필치가 엿보인다.
끝으로, 이 속편은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와 인물 묘사 면에서도 본편과 다르며, 나름의 특징을 지녔다. 범례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을 근본 논지로 삼고, 《금병매(金瓶梅)》를 빌려 희극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다만 근본 논지만을 강조하면 흥미를 잃을까 염려되어, 외설적인 이야기를 곁들여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었다. 그러므로 매 회차 서두에 《감응편》을 풀어 해석하고 비평한 뒤에 본편 서사로 들어가게 하였다. 설교가 주를 이루고 본전(本傳)이 부를 이루는 구성으로, 특별한 형식을 갖추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전편의 각 장은 실제로 교훈적 논설과 이야기 서술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이야기 전개에 앞서 교훈적 논설인 ‘정론(正論)’이 서술되어 있으며, 이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기초이자 근거가 되었다. 뒤이어 펼쳐지는 본편 이야기는 이러한 정론의 구체적인 해설과 주석 역할을 하였다. 두 부분이 결합하여 각 장의 주요 내용을 이루는 이 구조는 중국 고대 소설 중에서도 드문 방식이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설교투 논설이 지나치게 많아 본편 이야기를 압도하는 단점도 있었다. 이에 유정기(劉廷璣)는 《재원잡지(在園雜志)》 권3에서 “도학(道學)도, 소설도 아닌 게 되었다” 《道學不成道學,稗官不成稗官》라고 비판하였다.
인물 묘사에 있어서도 본편과는 성격이 달랐다. 《금병매》는 가정 일상생활의 세부를 통해 인물을 조형하고 세태를 드러냈지만, 《속금병매》는 송(金) 전쟁이라는 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두 작품은 서사 스타일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속금병매》에서 이사사(李師師), 정옥경(鄭玉卿), 적사관인(翟四官人), 장죽산(蒋竹山), 이은병(李銀瓶) 등의 인물은 비교적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으나, 대다수 인물은 뚜렷한 개성을 지니지 못하고 관념적 성격의 화신에 그쳤다.
《속금병매》는 간행된 지 오래지 않아 금서로 지정되어 파기되었다. 이후 다시 《격렴화영(隔帘花影)》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세상에 퍼졌다. 이 책은 《삼세보(三世報)》라는 다른 이름도 있으며, 총 48회로 구성되어 있고 저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권두에는 사교거사(四橋居士)가 쓴 서문이 있으며, 강희(康熙) 연간에 본아(本衙) 소장 목판본이 존재했다. 사교거사는 아마도 이 책을 편집·수정한 인물로 보이며, 《쾌심편(快心編)》을 평점한 이력이 있다. 《격렴화영》은 《속금병매》를 축약하고 정리하여 완성한 것이다. 주로 《속금병매》에서 송·금 전쟁을 묘사한 부분과 대량의 윤회와 설교 관련 문장을 삭제하고, 사건 전개를 조정하여 서사 흐름을 매끄럽게 다듬었으며, 장별 제목도 새롭게 고쳤다. 이로써 이야기가 보다 집중력 있게 전개되도록 하였다. 《담영실필기(譚瀛室筆記)》에서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격렴화영》은 확실히 《금병매》의 후속 작품이다. 다만 서문경(西門慶)은 남궁길(南宮吉)로, 오월랑(吳月娘)은 초운랑(楚雲娘)으로, 반금련(潘金蓮)은 홍수혜(紅繡鞋)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병아(李瓶兒), 춘매(春梅) 등의 인물들도 각각 의미를 담아 개명하였다. 또한 금나라 군대가 변경을 유린하고, 서문경 일가가 유랑하며 고난을 겪는 이야기, 그리고 부녀자들의 음탕하고 포악한 행태를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인과응보를 다루려는 의도는 대체로 충실하다. 비록 문체의 생동감이나 자유분방함은 《금병매》에 미치지 못하지만, 작품 완성도는 꽤 높은 편이다.”

  1. 가정생활류(家庭生活類)

이 부류의 작품들은 대부분 《금병매(金瓶梅)》의 사실주의 전통을 계승하여, 한 가문의 흥망성쇠와 일상생활을 묘사 중심으로 삼았다. 또한 세태의 냉혹함과 인간관계의 온기를 그려내어, 보다 광범위한 사회 생활을 반영하고자 하였다. 이는 세정소설(世情小說)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유형에 해당한다. 명청 교체기에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이 대략 세 편 존재하는데, 그 중 두 편은 숭정(崇禎) 연간에, 한 편은 순치(順治) 연간에 만들어졌다. 숭정 연간에 제작된 것은 《옥규홍(玉閨紅)》과 《쌍인연(雙姻緣)》이며, 순치 연간에 제작된 것은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이다.
《옥규홍》은 여섯 권 삼십 회로 이루어져 있다. 유휘(劉輝)와 설량(薛亮)이 편찬한 《명청희견소설경안록(明清稀見小說經眼錄)》에 따르면, 이 작품은 동로낙락평생(東魯落落平生)이 지은 것으로 전한다. 권두 서문 끝에는 “숭정 4년(1631) 신미년, 상음(湘陰)의 백미노인(白眉老人)이 금릉(南京) 포간재(抱簡齋)에서 지은 글”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백미노인의 나이는 예순다섯이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숭정 4년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창작 기법과 구성에서 《금병매》의 영향을 뚜렷이 받았다. 소설 제목 역시 《금병매》처럼 등장인물 세 명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구성하였다. 이야기의 배경은 명대 천계(天啓) 연간으로 설정되었다. 당시 권신 위충현(魏忠賢)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감찰어사 이세년(李世年)이 위충현의 죄상을 조목조목 열거하여 상주하였다가 옥중에서 피살당하는 사건을 다루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죽음을 듣고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딸인 규정(閨貞)은 시녀 홍옥(紅玉)과 함께 황급히 도망치나, 도중에 사기당하여 기녀가 되는 비참한 운명을 겪는다. 이후 홍옥은 금상서(金尙書)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규정은 외삼촌의 도움으로 구출해 금문옥(金文玉)과 혼인을 약속한다. 한편 위충현은 반역을 꾀하다가 탄핵을 받아 처형되며, 이는 인과응보의 결과로 묘사되었다.
이 소설은 명나라 말기의 역사적 사건을 직설적으로 기록하고, 현실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특히 하층민과 시장 상인의 생활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백미노인은 서문에서 이 작품을 두고 “문장이 화려하고 표현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볼 수 없었던 수준에 이르렀다. 조정의 고관대작에서부터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말투와 행동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그 특징을 모두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고 극찬하였다.
《쌍인연(雙姻緣)》은 《쌍연쾌사(雙緣快史)》라는 별칭도 있으며, 네 권 열두 회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소화주인(笑花主人)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숭정 연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권두에 실린 성세주인(醒世主人)의 서문에서는 이 책의 창작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예로부터 선을 쌓은 가문은 반드시 후손에게 복이 돌아가고, 악을 쌓은 가문은 반드시 재앙이 따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색정에 눈이 멀어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한 나머지, 오히려 백 년 동안의 죄업을 쌓아 몸을 망치고 가문을 멸망시키며, 자손에게까지 재앙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소설은 풍몽룡(馮夢龍)의 《고금소설(古今小說)》 권40에 실린 〈심소하상회출사표(沈小霞相會出師表)〉를 기본 줄거리로 삼고, 기타 여러 문헌을 혼합하여 구성하였다. 작품은 명대의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고씨(高氏) 부자(父子)는 권신 엄숭(嚴嵩) 부자를, 예부시랑 서정(徐貞)은 심련(沈鍊)을 암시하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야기 전개가 거칠고, 인물 묘사 역시 매우 단순하였다. 특히 서수(徐繡)의 이야기는 근거 없이 허구로 꾸며낸 것으로, 매우 황당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위에서 소개한 《옥규홍》과 《쌍인연》 두 작품 모두 명대의 사실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충신과 간신의 투쟁을 묘사했다. 그러나 그 성격은 서로 달랐다. 《옥규홍》은 이세년과 위충현 간의 갈등을 단순한 이야기의 발단으로 삼았다. 전편에 걸쳐 이규정, 홍옥, 금문옥 세 인물의 이별과 재회를 중심으로 전개하여, 조정의 고관대작에서부터 시정 잡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회생활을 반영하였다. 이로써 보다 전형적인 세정소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반면, 《쌍인연》은 서정과 고씨 부자 간의 갈등과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려는 목적이 두드러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두 쌍의 젊은 남녀의 혼인 이야기는 단지 부수적인 장치에 불과하였다. 이로 인해 현실 사회를 반영하는 폭과 깊이 면에서는 《옥규홍》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1. 개인 경험류(個人際遇類)

이 부류의 작품은 주로 특정 인물의 삶의 경험을 통해 세태와 인간사를 묘사하였다. 이야기 내용은 주인공 개인의 흥망성쇠와 운명적 기복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가정생활의 자질구레한 세부 묘사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춘추배(春秋配)》가 있다.
《춘추배》는 네 권 열여섯 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자는 명시되어 있지 않고 간행 시기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작품 서두에 “대명 천계 연간”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 유민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설은 천계(天啓) 연간 남양(南陽) 나군(羅郡)의 서생 이춘발(李春發)의 일생을 서술하였다. 이춘발은 학문이 뛰어나 다방면에 통달하였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중양절(重陽節)에 친구 장언행(張言行)과 밤에 술을 마시던 중, 도둑 석경파(石敬坡)가 침입한다. 장언행이 도둑을 붙잡았으나 이춘발은 은전을 주어 석경파를 풀어주고, 이에 석경파는 크게 감격한다.
이후 장언행은 과거에서 낙방하자 좌절하여 산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려 하고, 떠나기 전 여동생 추련(秋聯)을 고모부 후상관(侯上官)에게 부탁한다. 한편 상인 강운(姜韻)의 딸 추련(秋蓮)은 계모 가씨(賈氏)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숲으로 나무를 하러 나왔다가 이춘발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이춘발은 은전을 주고 떠나나, 이를 알게 된 가씨는 추련을 음란하다고 모함하고 관가에 고발하려 한다. 추련은 유모와 함께 밤에 몰래 달아나나, 도중에 후상관을 만나 유모가 살해되고 소지품을 빼앗긴다. 추련은 결국 비구니 암자에 몸을 숨긴다. 가씨는 딸이 도망친 사실을 관가에 고발하면서 이춘발이 여인을 유괴하고 살해했다고 무고한다. 이춘발은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하고, 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석경파는 반드시 추련을 찾아 이춘발을 구출하겠다고 결심한다. 후상관은 추련(秋联)을 기생으로 팔아넘기려 하나, 추련은 이를 거부하고 도망친다. 석경파는 추련(秋联)을 추련(秋蓮)으로 착각하여 미행하고, 추련은 석경파를 악인으로 오해하여 우물에 뛰어든다. 석경파는 이 상황을 관청에 알리고 실종자를 찾고자 한다. 때마침 강운이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우물 근처에서 사람 소리를 듣고 추련을 구해낸다. 그러나 마부는 추련의 아름다움에 욕심을 품어 강운을 살해하고 추련을 납치하려 한다. 그런데 마침 새로 부임한 순무(巡撫)가 이를 구출한다. 장언행은 이춘발이 억울하게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를 이끌고 남양을 공격하여 이춘발을 구출한다. 순무는 사건을 심문하여 진상을 밝히고, 이춘발은 추련, 추련 두 여인과 혼인한다. 장언행 또한 조정에 투항한다.
소설은 이춘발이 억울하게 옥살이한 사건, 가씨가 추련을 학대한 일, 후상관이 추련을 기생으로 팔아넘기려 한 사건 등을 통해 당시 관리들의 부패와 인간사의 냉혹함을 폭로하고, 선량하고 무고한 이춘발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드러냈다. 작품 속 장언행의 인물 묘사는 특히 의미가 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나고 무력도 갖추었지만, 과거시험에서 탈락한 후 과거 출신 자격을 박탈당한다. 이에 크게 분개한 그는 집안에 틀어박히기를 거부하고, 세상에 놀랄 만한 큰일을 이루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이춘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나는 평생 화복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고대 성현처럼 몸가짐을 가다듬고 학문에 정진하는 길은 내 성정에 맞지 않는다. 나 스스로 약간의 재주를 지녔으니, 마땅히 큰 뜻을 품고 남들이 하지 못하거나 감히 하지 않는 일을 해야 천지를 놀라게 하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작은 것에 만족하고 남의 억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삶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의 성격에는 억울함과 불만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으며, 이는 작가 자신의 감회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고, 줄거리는 매우 곡절이 많다. 추련과 추련이라는 두 인물의 이름이 비슷하여 생기는 착오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사건을 이어갔고, 이야기의 전개는 빈틈없이 짜였다. 문장은 간결하고 경쾌하며, 인물 간의 대화는 생동감이 뛰어나다. 이 작품은 후세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희곡 《춘추배(春秋配)》로 개작되었다.

(2) 명청 교체기 세정소설의 대표작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은 원래 제목이 《악인연(惡姻緣)》이었으며, 명청 교체기 세정소설 중에서도 비교적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이다. 이 책은 총 100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명에는 ‘서주생(西周生) 집저(輯著)’, ‘연려자(然藜子) 교정(校訂)’이라고 되어 있다. 권두에는 서문이 수록되어 있고, 말미에는 ‘환벽주인(環碧主人)’이 술회한 서명이 “신축년 청화망후 자정에 취중에 집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범례(凡例) 여덟 조와 동령학도인(東嶺學道人)의 서문이 함께 실려 있다.
서주생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청대 이래 여러 설이 제기되어왔다. 포송령(蒲松齡) 설, 비포송령설, 산동 장구(章丘) 출신설, 하남 출신설, 정요항(丁耀亢) 설 등이 있으나, 현재까지도 명확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범례에 따르면 이 책은 “오직 동방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여 서술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또한 작품 곳곳에서 노중(魯中) 지역의 풍토와 민정을 상세히 묘사한 것으로 보아, 저자는 산동 장구(章丘), 치박(淄博), 제남(濟南) 일대 출신으로 추정된다.
동령학도인의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무림(武林)에서 전해져 백하(白下)에서 교정되었으며, 선악을 분명히 구분하는 담론을 많이 담고 있다. …… 원래 제목은 《악인연》이었는데, 이는 사람의 전생에서 이미 악업을 지었으면 후생에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이치를 드러낸 것이다. 이미 악한 마음을 품으면 결국 악한 운명을 맞게 되니, …… 나는 세상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악한 생각을 끊고 선을 쌓기를 바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세상을 교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그래서 범례 뒤에 ‘장차 이 책을 펼치는 사람마다 바로 깨어나게 하자’는 뜻으로 제목을 《성세인연전》이라 고쳤다.” 이러한 서문은 책의 간행 과정과 창작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소설의 성립 시기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존재한다. 일설에는 강희(康熙) 연간에 완성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손해제(孫楷第)는 《여호적지론성세인연서(與胡適之論醒世姻緣書)》에서, 책에 기록된 자연재해가 숭정(崇禎) 이후 강희 삼사십 년간의 사건이라는 점을 들어, 책의 성립 시기를 강희 연간으로 추정하였다. 또 일설에는 순치(順治) 18년(1661) 완성설이 있다. 전박(田璞)은 《성세인연전 저자 신탐(醒世姻緣傳作者新探)》이라는 글에서, 서문에 기재된 ‘신축년(辛丑年)’이 순치 18년 또는 강희 60년(1721) 가운데 하나일 수 있으나, 여러 근거를 통해 강희 연간 설은 배제하고 순치 18년설이 보다 신빙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다.
또 다른 설에는 숭정 연간 완성설이 있다. 왕수의(王守義)는 《성세인연전의 성서 연대(醒世姻緣的成書年代)》에서, 원본의 피휘(避諱) 상황과 작품에 반영된 사회 현실을 검토하여, 이 책이 명말 숭정 시기에 이미 쓰였다고 주장하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를 종합하면, 순치 18년 완성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원세석(袁世碩)은 《패변쇄기사칙(稗邊瑣記四則)》에서 《안씨가장척독(顏氏家藏尺牘)》 권3에 실린 주재준(周在浚)이 안광민(顏光敏)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면서, 빌려간 《악인연》 소설을 되찾는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원세석은 이 편지가 강희 20년(1681)에 작성된 것임을 고증하였다. 이에 따라 이 소설은 1681년경 소주(蘇州)의 서방(書坊)에서 처음 간행되었고, 이때 제목도 《성세인연전》으로 변경되었으며, 동령학도인은 소주 서방의 인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이로써, 《성세인연전》 권두 서문에 적힌 ‘신축년’이란 순치 18년을 가리키며, 강희 60년설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순치 연간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설은 명나라 정통(正統)에서 성화(成化) 연간까지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두 생애에 걸친 억울한 원한과 인연을 다루었다. 앞의 22회는 ‘전생의 인연’을 다루었는데, 산동 무성현(武城县)의 향사(鄕紳) 조사효(晁思孝)의 아들 조원(晁源)이 사냥에서 신령스러운 여우를 쏘아 죽여 생명을 해친 결과 악업을 쌓게 되었다. 조원은 정실부인 계씨(計氏)를 업신여기고, 창녀 진가(珍哥)를 첩으로 맞이하여 총애하며 정실을 학대하고 괴롭힌다. 결국 계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조원은 간통 사건에 휘말려 살해당한다.
제23회부터는 ‘현생의 인연’을 다룬다. 조원은 죽은 뒤 자수현(綉江縣) 명수진(明水鎭) 서생 적희진(狄希陳)으로 환생한다. 죽은 신령 여우는 그의 아내 설소저(薛素姐)로 환생하여 적희진을 온갖 방식으로 학대한다. 계씨는 적희진의 첩 동기저(童寄姐)로 환생하여 적희진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한편 진가는 가난한 집안의 딸 소진주(小珍珠)로 다시 태어나 동기자에게 팔려 하녀가 되며, 끝내 고초를 겪다가 살해당한다.
이처럼 전생의 원한을 현생에서 되갚자, 고승이 나타나 인과관계를 밝힌다. 적희진은 만 권의 《금강경(金剛經)》을 독송하여 마침내 “복이 오고 화가 소멸되어, 원한이 풀리고 원망이 사라지는” 결말을 맞이한다. 설소저는 병사하고, 동기자는 적희진의 정실 아내가 된다. 적희진은 평온하게 생을 마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세인연전》은 짙은 숙명론적 색채를 지닌 소설로, 윤회와 인과응보를 설파하는 데 주력하였다. 사상적 관점에서는 특별히 탁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가는 현실 생활에 대해 비교적 깊이 있는 관찰을 보여주었으며, 인생에 대한 성찰도 비교적 냉정하게 담아내었다. 이로 인해 작품은 명말 이래 사회 문제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높은 인식적 가치와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중국 세정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품의 주제 면에서 보면, 소설의 원제와 개명된 제목이 모두 암시하듯, 이야기의 중심은 두 생애에 걸친 가정의 변태적 부부 관계를 묘사하는 데 있다. 작품의 서두에서 저자는 유교의 옛 가르침에 따라 맹자의 말을 인용한다. 인생에서 세 가지 큰 기쁨이 있는데, 그 근본은 부부 윤리에 있으며, “또 하나의 어질고 덕망 있는 아내를 맞이해야만 이 세 가지 기쁨을 완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정반대로, 사랑도 없고 덕도 없는 부부, 방탕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생활, 서로 정과 도리를 저버린 파탄 난 부부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삶의 이치를 깨우치게 하려 했다.
전생의 조가(晁家)에서는, 남편 조원이 사치와 방탕을 좋아하고 음탕하게 생활하였으며, 첩 진가는 총애를 믿고 교만하여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켜 집안을 어지럽힌다. 현생의 적가(狄家)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더욱 심해져 “남녀의 역할이 뒤바뀌고,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깨진” 상황이 벌어진다. 적희진은 겁이 많고 무능하며, 아내 설소저는 포악하고 강압적이다. 그녀는 시부모에게 불손하고, 생부를 화병으로 죽게 했으며, 남편을 잔혹하게 학대하고 가문을 파탄에 이르게 하였다. 나아가 시아버지가 아들을 다시 낳아 재산을 빼앗는 게 두려워 그를 거세하려는 음모까지 꾸민다.
또한 첩 동기저는 성격이 포악하다. 하녀를 학대하고 남편을 억압하며, 잔인하고 무정하게 행동한다. 이러한 묘사는 작가가 여성에 대해 일정한 편견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봉건사회 일부다처제의 폐단을 사실적으로 반영하였으며, 재산 분배 문제로 발생하는 가정 내 갈등과 집안 간 분쟁을 드러내어, 명 중엽 이후 가정 윤리와 도덕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
작가는 이러한 문제를 모호하게는 인식하고 있었다. 소설 제13회의 회수시(回首詩)에서는 “가문을 이루려면 두 쟁기가 필요하고, 가문을 망치려면 두 아내를 들이라”고 읊으며 다처제가 가정을 파탄시킬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러나 작가는 결국 불법(佛法)을 더욱 신뢰하였고, “인과응보”의 관념을 통해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설명하려 하였다. 그는 “큰 원한과 깊은 적대는 현세에서는 갚을 수 없어, 다음 생애에는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져 다시 갚는다”고 믿었으며, 전체 이야기를 숙명론적 틀 속에 가두었다. 이는 사유의 혼란과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다.
호적(胡適)은 《성세인연전 고증(醒世姻緣傳考證)》에서 이에 대해 “사실 조씨(晁氏)와 적씨(狄氏) 두 가문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사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인과응보에만 집착한 나머지, 이러한 자연스러운 사실들을 모두 무시해버렸다”고 지적하며, “사실상의 모순을 무시하고, 오직 인과응보의 신묘함만을 강조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둘째로, 작품은 조씨와 적씨 두 집안의 두 생애에 걸친 악연을 중심축으로 삼는 동시에, 권신(權臣), 지방관, 지주, 상인, 유생, 승려, 농민, 하인, 소작인 등 다양한 사회 계층으로 시선을 넓혀갔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당대 관료 사회의 추악상과 관리들의 탐욕, 과거 시험의 부정을 고발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더러움, 농촌 사회의 피폐, 민중의 무지몽매를 폭로하여, 복잡하고 혼탁한 사회 풍속도를 그렸다.
예를 들어, 조사효(晁思孝)는 원래 글을 써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서생이었으나, 권신에게 뇌물을 바쳐 지방 관직을 산다. 그는 부임한 후 탐욕스럽게 세금을 착취하여 3년 동안 부정한 돈을 10만 냥 넘게 모은다. 그의 아들 조원(晁源)은 부를 믿고 향촌을 제멋대로 휘두르다가, 계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뒤에도 관아에 뇌물을 써서 처벌을 피한다. 후에 진가(珍哥)가 구속되어 사형수가 된 후에도, 조원은 돈을 써서 감옥 안에 별당을 세우고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이후 감옥 관리 장봉서(張鳳瑞)는 감옥 안에서 진가와 간통하고, 화재를 일으켜 다른 죄수와 신원을 바꿔치기한 다음 그녀를 몰래 빼내어 첩으로 삼는다. 적희진(狄希陳)은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으나,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사들여 사대부 행세를 하고, 3~4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면서 무려 은자 5천 냥을 횡령한다.
작가는 이러한 부패상을 가슴 깊이 분노하며 고발하였다. 그는 제10회의 회수시(回首詩)에서 관리를 향해 통렬히 다음과 같이 규탄하였다. “관리는 법을 어기고 뇌물을 받아 부정을 저지르며, 염치와 체면을 아예 저버렸다.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무시하고, 하늘의 이치조차 망각하였다. 세상의 공론은 거꾸로 뒤집혔고, 시비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또한, 그는 민간 사회에 대해서도 “힘센 자가 마구 폭력을 휘두르고, 도적과 사기꾼이 횡행하며, 권세와 부를 믿고 제멋대로 행패를 부린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동시에 작가는 이러한 사회 병폐의 근본 원인이 바로 ‘금전(金錢)’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제94회 서두에서 그는 “벼슬아치가 거리낌 없이 무법과 패악을 일삼는 이유는 결국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 ‘배경’이라는 것도 결국 첫째는 ‘돈’, 둘째가 ‘권세’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권세조차도 돈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허약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금병매(金瓶梅)》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금병매》의 서문경(西門慶) 역시 ‘금전만능(金錢萬能)’의 신념을 신봉하였으며, “막대한 부귀가 있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조금 뒤 시기의 작품인 《형세언(型世言)》 제2회에서도 “오늘날 세상은 오직 돈이 최고일 뿐”이라 하였고, 제23회에서는 “요즘 사람들은 돈 앞에서 가장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두어 푼의 시골 돈만 있어도 곧 대저택을 짓고, 호화로운 음식과 옷을 누리며, 하인과 머슴을 부리고 좋은 말과 가벼운 수레를 탄다”고 개탄하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작가가 심한 울분을 품고 점점 황폐해져 가는 도시와 농촌의 풍속을 묘사했다는 점이다. 후손이 없는 재산을 둘러싼 친족 간의 쟁탈전, 지주 자제들이 소작인의 아내를 함부로 농락하는 행위, 삼고육파(三姑六婆) 감언이설로 나쁜 짓을 일삼는 천한 여성들. ‘三姑’는 ‘尼姑’(여승)·‘道姑’(여자 도사)·‘卦姑’(점쟁이)이고, ‘六婆’는 ‘牙婆’(인신매매하는 여인)·‘媒婆’(매파)·‘師婆’(여자 무당)·‘虔婆’(기생 어미)·‘藥婆’(병을 치료하는 여인)·‘穩婆’(산파)를 의미한다. 《陶宗儀· 輟耕錄》
가 돈을 속여 빼앗는 일, 사기꾼들은 돈을 속여 빼앗고, 장사꾼들은 물건을 속여 팔고, 형제는 서로 해치고 친구는 믿음을 저버리며, 소작농이나 떠도는 사람들은 나쁜 짓을 벌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작가는 이러한 세태를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진실함은 점점 거짓됨으로 변하고, 충성과 후덕함은 점차 도둑질로 바뀌었다. 아버지와 아들, 군주와 신하도 모두 허망할 따름이며, 형제와 친구조차 모두 원수처럼 된다.”
이밖에도 작품은 농촌의 무거운 조세 부담과 연이은 재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였으며, 재난을 겪는 백성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표현하였다. 손개제는 《여호적지론성세인연서》에서 “이 소설은 풍토와 물산의 풍요로움, 고금의 인심 변화를 가까이서 관찰하여 깊이 있게 서술하고, 천재지변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히 서술하였다. 비록 연대가 뒤죽박죽이긴 하나, 그 사실 묘사만큼은 결코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라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은 이전의 세정소설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영역이었다.
이 소설은 예술적 성취 면에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첫째로, 언어 스타일이 활달하면서도 날카롭고, 유머와 깊이를 겸비하여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 범례(凡例)에서는 “이 본전(本傳)의 문장은 다소 속된 표현을 섞었고, 사용하는 단어 또한 거칠다”고 하였으며, 작품 전반에 걸쳐 노중(魯中) 지역의 구어체를 많이 차용하여 강한 지역적 색채를 드러냈다. 손개제(孫楷第)는 앞서 인용한 저술에서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전체 백 회 분량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써내려갔으며, 순수하게 토착어를 문장에 사용하여 농촌 남녀의 말투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문체 또한 거침없이 흘러 넘쳐 활달하였으며, 비록 묘사 부분에서 다소 여운이 부족한 면이 있긴 하나, 그 생동감과 지역성 짙은 세련된 표현은 중국 소설 중에서도 드물다.” 그는 또 《희곡소설서록해제(戲曲小說書錄解題)》에서도 “이 책은 비록 속어로 서술하였으나, 위로는 《수호전(水滸傳)》에 견줄 수 있으며, 아래로는 《홍루몽(紅樓夢)》에 필적할 만하다”고 극찬하였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로, 제14회에서 조원이 진가(珍哥)와 이별하며 임지로 떠나는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진가는 조대사(晁大舍)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교를 부리며 애원했다. “나는 당신을 임지로 보내기 싫어요! 만약 내 말을 듣지 않고 떠난다면, 당신이 떠나자마자 나는 목을 매 죽고 말 거예요! 다음 생에도 당신의 어릴 적 이름을 붙잡고 계속 저주할 거예요!”

여기서 사용된 문장은 매우 간결하지만, 진가가 짓는 애교 섞인 표정과 삐딱한 말투를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둘째로, 작품의 구성과 짜임새 또한 매우 특이하다. 머리말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소설은 하나의 “인과응보”를 주제로 한 부부의 악연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앞부분은 조가(晁家)의 이야기를 다루며 “인과”를 서술하고, 뒷부분은 적가(狄家)의 이야기를 통해 “응보”를 서술하였다. 두 생애의 인연을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제로 일관되게 엮어낸 것이다.
범례에서는 “바느질 실처럼 앞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천의 이음매처럼 티 없이 연결되기를 바랐으나, 온전히 손질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또 제목을 붙인 서문에서는 “처음 대충 보면 이야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앞뒤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모든 내용이 결국 “권선징악”에 맞춰져 있다. 겉으로 보기엔 쓸모없는 이야기 같아 보여도 사실은 이야기의 흐름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전체 구성이 마치 이음매 없는 천처럼 자연스럽고 완벽하다”고 해설하였다. 이에 대해 노신(魯迅)도 《지전현동(致錢玄同)》에서 “이 소설은 묘사가 매우 세밀하다”고 평가하였다.
셋째로, 이 작품은 설소저(薛素姐), 동기저(童寄姐), 적희진(狄希陳) 등의 인물 심리를 다룬 데서도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 작가는 주로 과장된 만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이들의 질투, 아내를 두려워하는 심리 등의 변태적 심리를 묘사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때로 사실성과는 다소 어긋났지만, 현실적 요소를 분명히 담아내었다. 이와 같은 심리 묘사는 이전 세정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새로운 시도였으며,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의 예술적 독창성을 한층 부각했다.

(3) 명청 교체기 세정소설의 가치와 지위

명청 교체기의 세정소설은 그 개척자인 《금병매(金瓶梅)》에 견주어 볼 때, 계승과 모방, 그리고 발전이라는 세 측면을 함께 보여주었다. 이 가운데 《옥규홍(玉閨紅)》, 《속금병매(續金瓶梅)》,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과 같은 몇몇 주요 작품들은 각기 독특한 풍모를 드러내어 세정소설 발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들 작품은 대부분 《금병매》의 사실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실 인생을 직접적으로 반영하였으며, 중요한 인식 가치와 사회사적 자료 가치를 지녔다. 세정소설이 다루는 내용은 대개 작가 자신의 직접적 체험에 기반한 것이며, 강한 현실성과 짙은 시대적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죽파한화(竹坡閑話)》에서도 “《금병매》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환난과 궁핍 속에서 인간사와 세태를 하나하나 직접 겪은 이였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사를 예리하게 찔러서 그려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명대 중엽의 인간 풍속도를 생생히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옥규홍》은 위충현(魏忠賢)이 처형된 지 3년 후에 완성되었다. 이 소설은 감찰어사 이세년(李世年)과 위당(魏黨) 간 충신과 간신의 대립을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인간 세태를 묘사하였다. 책 속에 기록된 많은 내용은 작가의 체험이거나 직접 목격하고 들은 사실들이었기에, 평론가들은 “가정이나 개인의 은밀한 생활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숨은 구석까지 세밀하고 정확하게 들여다 보았다”고 평가하였다.
《속금병매》는 비록 명목상 송대(宋代)를 무대로 설정하였으나, 정진탁(鄭振鐸)이 《문학대강(文學大綱)》에서 지적했듯이, “책에 서술된 금인(金人)의 남하와 한인(漢人)이 겪은 고통은, 작가가 직접 체험한 현실을 묘사한 것처럼 생생하다”고 하였다. 바로 이 점 덕분에, 서호조사(西湖釣史) 또한 서문에서 “이 책은 나라가 흥망하는 큰 이야기부터, 집 안 여인들과 하인들의 일상적인 삶까지 모두 담았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과 세상이 어떻게 흩어지고 모이는지, 사회가 어떻게 격렬하게 변하는지, 사람들의 생과 죽음, 부침과 몰락, 꿈과 현실, 선악의 인과응보, 불교의 깨달음과 인간 세상의 욕망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두루 다루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백성이 전란을 피해 도망 다니는 처참한 광경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사료로 활용되기까지 하였다. 또한 《성세인연전》은, 범례에 “이 본전(本傳)의 이야기는 모두 근거가 있으며, 등장인물도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고 명시되어 있어, 작품에 서술된 내용들이 허구적 창작이 아니라 일정 부분 작가 자신의 체험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지마(徐志摩)는 《성세인연전 서문(醒世姻緣傳序)》에서 이 책을 “하나의 시대(적어도 몇백 년에 걸친)의 사회를 그린 생생한 스케치”라고 평가하며, 작가를 “일급 수준의 사실주의 대가”로 찬탄하였다. 또한 호적(胡適)은 《성세인연전 고증(醒世姻緣傳考證)》에서 이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 책은 가장 풍부하고 가장 상세한 문화사 자료 중 하나”라고 극찬하였다. 그는 또한 미래에 17세기 중국 사회의 풍속사, 교육사, 경제사, 정치 부패와 민생 고통, 종교 생활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반드시 이 책을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와 같은 평가들은, 명청 교체기의 세정소설이 《금병매》로부터 이어진 사실주의적 창작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었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각주

  1. 지금의 교육 국장에 해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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