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소설사] 명청 교체기의 소설(7) – 재자가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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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절 재자가인 소설의 부상

재자가인 소설은 청년 남녀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다룬 장회체 소설을 말한다. 이 장르는 명말에 등장하여 청초에 유행하였으며, 세정소설의 한 갈래인 ‘이류(異流)’로 여겨졌다. 등장인물은 대개 나이 어린 재능 있고 단정한 남자 유생과 젊고 아름다우며 슬기로운 여성으로, 두 사람은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시를 주고받으며 교감을 나눈다. 그러나 이야기 중반에는 간사한 인물의 훼방이나 부모의 반대로 인해 여러 차례의 이별과 슬픔을 겪게 된다. 결국 남자 주인공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고, 황제의 허락을 받아 결혼함으로써 이야기가 완결된다.

이러한 작품은 당대에 ‘가화(佳話)’라고 불렸다. 병음잠부(拚饮潜夫)가 《춘류앵서(春柳莺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가 여자의 미모를 사모함은 재능이 없으면 운치가 없고, 여자가 남자의 재능을 사모함은 용모가 없으면 이름값이 나지 않는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진정한 ‘가화’라 할 수 있다.”

이 장르의 작품은 분량이 길지 않고, 대부분 6회에서 20회 정도의 회수로 구성되어 있다. 문체는 비교적 수려하고 전아한 특징을 지녔다. 이와 같은 소설은 명말 청초 시기에 나타난 독특한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1) 명청 교체기 재자가인 소설의 부상과 그 원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기(史記)》의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은 재자가인 소설의 효시로 간주될 수 있다. 당대 전기 소설인 《앵앵전(鶯鶯傳)》, 《보비연(步飛煙)》 등은 재자가인 소설과 기본적인 구성 면에서 매우 유사하나, 결말이 모두 비극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송원 시기의 문언소설에서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다룬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며, 결말 또한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구성되었다. 대표적으로 《유홍기(流紅記)》, 《장호(張浩)》 등이 있다.

명대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 중에서는 〈취취전(翠翠傳)〉, 〈금봉차기(金鳳釵記)〉, 〈추향정기(秋香亭記)〉 등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언소설의 영향 아래, 명말의 화본소설에서도 재자가인 유형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단편으로는 《성세항언(醒世恒言)》 중 〈소소매 삼난 신랑(蘇小妹三難新郎)〉, 〈황수재 교영옥마추(黃秀才徼靈玉馬墜)〉 등이 있고, 중편으로는 《고장절진(鼓掌絕塵)》, 〈풍집(風集)〉, 〈설집(雪集)〉 등이 이에 속한다. 잡극 《서상기(西廂記)》는 그 구조와 구성에서 재자가인 소설과 거의 동일한 틀을 따르고 있었다. 명대 희곡 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으며, 이는 재자가인 이야기의 전형적 구조가 이미 명대에 정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명청 교체기 재자가인 소설은 바로 문언소설, 화본소설, 그리고 원·명 희곡을 토대로 하여 발전한 것이다.

재자가인 소설의 ‘개척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명청 교체기에 등장한 《옥교리(玉嬌梨)》는 재자가인 소설의 출현과 성숙을 알리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이후 《평산냉연(平山冷燕)》, 《옥지기(玉支璣)》, 《춘류앵(春柳鶯)》 등이 연이어 출간되며, 중국 소설사상 하나의 강력한 창작 유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장르는 청 전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나, 건륭(乾隆), 가경(嘉慶) 연간 이후 점차 쇠퇴하였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청말 민초의 원앙나비파(鴛鴦蝴蝶派) 소설에까지 이어졌다.

명말 청초 재자가인 소설의 등장은 다양한 원인에 기인하며,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작가의 생활 경험과 창작 심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명청 교체기의 격동기에 살았던 사대부들 중에는 출세한 이도 있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평생 낙오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신분의 몰락과 삶의 곤궁 속에서 마음이 지치고 냉소에 빠졌으며, 이에 자신의 회한과 감정을 소설 속에 투영하고자 하였고, 소설 창작을 통해 한때의 정신적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천화장주인(天花藏主人)은 《평산냉연》의 서문에서 이러한 창작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어찌하여 나는 푸른 구름 같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머리에 흰머리만 가득한 채 붓을 쥐고 있는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 종이에 쓰인 기쁘고 놀라운 이야기들은 모두 내 마음속에서 노래하고 울고 싶은 감정의 발로이다.” 연수산인(煙水散人) 또한 《여재자서(女才子書)》 중 “최숙서(崔淑序)”에서 다음과 같은 깊은 회한을 담았다. “세상이 어지럽고 분주한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공명과 부귀를 좇는 자들이 어찌 꿈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시대적 환경에서 비롯된 작가들의 좌절감과 공허함, 방황과 혼란이 바로 그들로 하여금 재자가인 소설을 집필하게 만든 주요한 심리적 동인이었다.

둘째, 명말의 문화 사조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이다. 재자가인 소설 작가들은 대개 하층 문인이었고, 그들은 명말 탕현조(湯顯祖)의 ‘진정(真情)’ 사상과 풍몽룡(馮夢龍)의 ‘정교(情教)’ 이론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이학(理學)의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하라’는 사상에 일정한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그들의 혼인과 연애관 속에는 어느 정도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진보적 요소도 내포되어 있었다.

예컨대, 《비화영(飛花詠)》의 작가는 “남녀는 본래 강한 욕망을 지닌 존재이며, 더구나 재능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이라면 더욱 정에 풍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정정인(定情人)》에서는 “인생의 큰 욕망이란 남녀 간의 욕망이며, 양자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사상과 심미 취향이 대중 시민의 감정적 요구에 부합했다는 점은, 재자가인 소설이 흥하게 된 사상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장회체 소설은 명대 동안의 발전을 거쳐 청초에 이르러 매우 중요한 문학 형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광범위한 독자층을 보유하게 되었다. 작가들은 이를 통해 자기 감정을 발산하고, 서점 상인들은 이를 팔아 이익을 얻으며,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소일과 오락의 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재자가인 소설이 창작되기에 적합한 선순환이 형성되었다. 소설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재자가인 소설의 부상은 명말 시기의 《금병매(金瓶梅)》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이루어진 결과였다. 《금병매》는 비록 재자가인 소설은 아니지만, 문인의 독자적 창작이며, 주제로 현실 생활 속의 세태와 인간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재자가인 소설에 매우 강력한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루쉰(魯迅)은 《금병매》와 재자가인 소설을 모두 ‘인정소설(人情小說)’이라 통칭하면서, 재자가인 소설을 “‘금병매’를 모방한 변종”이라고 하여, 양자의 계승 관계를 밝혀주었다. 실제로 많은 재자가인 소설은 《금병매》의 제목 짓는 방식을 따라, 주요 인물 이름 가운데 한 글자씩을 따서 서명을 정하였으며, 이러한 모방의 흔적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2) 천화장주인과 명청 교체기 재자가인 소설의 주요 작품

명말 청초 재자가인 소설의 초기 창작 시기에 등장한 작품은 대략 일곱 종에 달한다. 명말에 나온 두 작품은 《장대류(章台柳)》와 《산수정전(山水情傳)》이며, 순치(順治) 연간에 간행된 다섯 작품은 《옥교리(玉嬌梨)》, 《평산냉연(平山冷燕)》, 《옥지기(玉支璣)》, 《춘류앵(春柳鶯)》, 《호구전(好逑傳)》 등이 있다.

《장대류》는 4권 16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는 명기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당대의 재자 한붕(韓棚)과 아름다운 여인 유희(柳姬)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둘의 이야기는 당송 시기를 거쳐 명청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인기를 누린 고전적 소재였다. 이 소설은 대언체(代言體)로 서술되어 있으며, 전기소설의 흔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제여산(齊如山)은 《하버드대학 소장 고양 제씨 백사재 선본소설 발미(哈佛大學所藏高陽齊氏百舍齋善本小說跋尾)》에서, 이 작품에 대해 “구성이 매우 독특하며, 대언체로 작성되어 잡극이나 전기와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였고, “이러한 형식은 소설 중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예로, 명대 인물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산수정전》은 22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는 역시 불분명하나, 권두에 작안주인(倬庵主人)의 서문이 붙어 있다. 춘풍문예출판사에서 간행한 《중국 고대 고본소설》 제4집에서는, 책의 활자 형태와 ‘현(玄)’ 자를 피하지 않는 반면 ‘검(檢)’ 자는 간혹 회피하는 점을 근거로, 이 작품이 명말 숭정(崇禎) 연간에서 청초 순치(順治) 연간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작품은 송대 위욱하(衛旭霞)와 오소경(鄔素瓊) 사이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두 작품 모두 재자가인 소설에 속하지만, 전형성은 다소 부족하다. 특히 《장대류》는 명대의 매정조(梅鼎祚)가 지은 전기소설 《옥합기(玉合記)》를 기반으로 원래 전기소설을 일부 삭제하고 수정하여 구성한 것으로, 간략하고 거칠며 형식이 정제되지 못했다. 후자의 경우는 위욱하(衛旭霞)와 오소경(鄔素瓊) 두 사람의 결합을 그리고 있으며, 비구니 요범(了凡)을 매개로 삼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야기 속에는 간악한 인물이 등장하여 이들을 이간하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장면이 전혀 없다. 또한 요범이 위욱하와 몰래 정을 통한 뒤 천벌을 받아 죽게 되는 과정을 그려, 인과응보의 관념을 설파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이후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재자가인 소설과는 그 성격과 분위기에서 다소 차이를 보였다.

이 시기 재자가인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는 천화장주인(天花藏主人)이었다. 그의 이름, 출신지, 생몰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대불범(戴不凡)은 그를 가흥(嘉興) 출신의 서진(徐震)으로 보았고, 왕청평(王青平)은 그를 《삼언(三言)》과 《석점두(石點頭)》 등을 편찬한 묵랑주인(墨浪主人)으로 추정하였으나, 아직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현재까지 천화장주인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소설은 총 열여섯 종에 달한다. 《인간락(人間樂)》, 《옥지기(玉支璣)》, 《양무제서래연의(梁武帝西來演義)》, 《취보제전전(醉菩提全傳)》, 《옥교리(玉嬌梨)》, 《평산냉연(平山冷燕)》, 《양교혼(兩交婚)》, 《금운교전(金雲翹傳)》, 《환중진(幻中真)》, 《후수호전(後水滸傳)》, 《금의단(錦疑團)》, 《비화영(飛花詠)》, 《린아보(麟兒報)》, 《화도연(畫圖緣)》, 《정정인(定情人)》, 《새홍사(賽紅絲)》 등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천화장주인 지음, 편찬, 서문 집필’ 등으로 표기되거나, 서문을 그가 직접 쓴 경우가 많다. 천화장주인은 명말에 태어나 청초에 활약한 인물이며, 당시 문단에서 이름난 재자가인 소설 작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천화장합간칠재자서서(天花藏合刻七才子書序)》에 따르면, 그는 “시문에 뜻을 두고, 글씨와 문장을 정성스럽게 연마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재능을 펼 기회를 얻지 못해 ‘구원의 땅속에 묻히는 고통’을 차마 견디지 못해” 소설 집필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억눌린 감정을 소설로 토로하였음을 보여주며, 더불어 재자가인 소설 창작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킨 작가로서, 중국 소설사에 있어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순치 연간에 간행된 네 편의 재자가인 소설은 내용이 정통적이며, 문체가 단아하고 품격이 있어, 재자가인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유형을 대표한다. 유정기(劉廷玑)는 《재원잡지(在園雜誌)》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요즘 소설 중에서, 《평산냉연(平山冷燕)》, 《정몽탁(情夢柝)》, 《풍류배(風流配)》, 《춘류앵(春柳鶯)》, 《옥교리(玉嬌梨)》 등과 같은 작품들은, 재자와 가인이 서로의 용모와 재능을 흠모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리 문란하지 않아 세속의 풍속을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

《옥교리》는 20회 분량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청초에 가장 먼저 간행된 재자가인 소설이며, 이 장르의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서명에는 ‘이추산인(荑秋散人, 또는 이획산인 荑獲山人, 획안산인 獲岸散人)이 편찬함’이라 되어 있으나, 실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통속소설서목(中國通俗小說書目)》에서는 이 인물을 수수(秀水)의 장운(張匀)으로 보았고, 임신(林辰)의 《천화장주인과 그의 소설(天花藏主人及其小說)》에서는 이를 서문을 쓴 천화장주인과 동일인으로 추정하였으나,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 “칠재자서(七才子書)” 본권 앞에는 순치 15년(1658) 천화장주인 서문이 있다. 이 작품은 명나라 정통 연간을 배경으로, 태상경(太常卿)의 딸 백홍옥(白紅玉)이 시를 통해 혼인을 결정하려 하면서 시작된다. 재자 소우백(蘇友白)이 시를 지어 시험에 응시하지만, 불량배 장궤여(張軌如)가 몰래 시를 바꿔치기하여 혼란이 생긴다. 홍옥은 이 음모를 간파하고, 소우백과 혼약을 맺는다. 이후 소우백은 과거를 보러 상경하던 중, 재녀 노몽리(盧夢梨)와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누고 비밀리에 약혼한다. 과거에 급제한 뒤, 지방관이 강제로 혼인을 요구하자, 소우백은 벼슬을 버리고 떠난다. 여러 곡절 끝에 결국 소우백은 백홍옥, 노몽리와 더불어 원만히 결연하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은 여주인공 홍옥(훗날 이름을 오교로 바꿈)과 노몽리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따와 연결하여 지은 것이다. 작품의 장회 제목은 비교적 독특하다. 36회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34자 어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뒤 회차 제목이 서로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예컨대 제1회는 “소재녀대부제시(小才女代父題詩)”, 제2회는 “노어사위아모부(老御史為兒謀婦)”, 제19회는 “착중착 각불수심(錯中錯各不遂心)”, 제20회는 “금상금 대가여원(錦上錦大家如願)”과 같은 식이다. 당시의 《호구전(好逑傳)》과 후대의 《환중유(幻中遊)》, 《쟁춘원(爭春園)》 등도 이 체제를 채용하였다.

《평산냉연(平山冷燕)》 역시 20회 분량으로, 동시대 재자가인 소설 중 가장 명성이 높았던 대표작 가운데 하나였다. 이 작품의 저자 표기와 서문도 《옥교리》와 동일하다. 심계우(沈季友)의 《휴이시계(攜李詩系)》에서는 이를 수수(秀水)의 제생 장균(張匀)이 12세에 지은 것이라 하였고, 성백이(盛百二)의 《유당속필담(柚堂續筆談)》은 가흥(嘉興)의 장소(張劭)가 14~15세에 지은 것이라 보았지만, 둘 다 신빙성이 높지 않다. 이 책은 작자가 자신의 울적한 심사를 달래고 내면의 감정을 토로하기 위해 창작한 작품으로 보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 왕조 시기 대학사의 딸 산대(山黛)는 《백연시(白燕詩)》를 지어 천자의 찬탄을 받는다. 이에 산인 송신(宋信) 등이 시기하여 시비를 걸다 대패하고 벼슬에서 물러난다. 강도(江都)의 재녀 냉강설(冷絳雪)은 용모가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났지만, 사람들의 박해를 받아 산부(山府)의 기실로 소집된다. 낙양의 재자 평여형(平如衡)과 화정(華亭)의 재자 연백함(燕白頷)은 시재로 경쟁하며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산대의 명성을 흠모하여 각각 다른 이름으로 변장하고 상경한다. 이후 산대, 냉강설과 시문을 겨루지만 모두 패한다. 두 재자는 두 재녀에게 구혼하고자 하지만, 송신 등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연, 평은 각각 장원과 탐화(探花)로 급제하고, 황제의 명에 따라 산대, 냉강설과 결혼하여 서울에서 화제가 되었다. 서명은 네 인물의 성씨를 따서 만든 것이다.

이 두 작품의 근본 취지는 루쉰의 표현대로, “여성의 재능을 드러내고 그들의 비범한 능력을 찬양하며, 과거 시험에서 강조되는 문체(制藝)를 얕보는 대신 시문의 아름다움을 중시하고, 준수하고 재능 있는 인물을 높이며, 평범한 선비는 조소했다”는 데 있었다. 두 작품 모두 구성이 정교하고 자연스럽고, 서사가 곡절을 이루며, 언어는 우아하고 정련되었다. 건륭 연간 오항야객(吳航野客)의 《주춘원(駐春園)》 중 “개종명의(開宗明義)” 편에서는 “여러 전기소설을 훑어보건대, 《성세각세(醒世覺世)》 외에는 대체로 재자와 가인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중에서도 《평산냉연》과 《옥교리》는 특히 뛰어나며, 그 문필이 속되지 않고 고아한 모범을 갖추고 있다”고 평하였다. 이 두 작품은 재자가인 소설의 형식, 제재, 사상적 기초를 공고히 세운 기념비적 저작이었다. 1860년, 《평산냉연(平山冷燕)》은 프랑스의 쥘리앵(裘利恩)에 의해 불어로 번역되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서양에 널리 알려진 중국 고대 소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옥지기(玉支玑)》는 4권 20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화장주인(天花藏主人)이 서술하다’라고 되어 있다. 《중국통속소설서목(中國通俗小說書目)》에서는 “즉 저자 자신일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밖의 이본 중에는 ‘연수산인(煙水散人)이 배열함’으로 표기된 것도 있다. 이 소설은 명나라 절강성 처주부(處州府) 출신의 재자인 장손소(長孫肖)가 퇴직한 시랑(侍郎) 관회(管灰)의 인정을 받아 그의 사위가 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손소는 가보인 아름다운 옥 장식 ‘옥지기(玉支玑)’를 예물로 삼는다. 관회의 딸 관청미(管青眉)는 재주와 용기가 겸비된 여성이다. 인근 군의 장관 복상서(卜尚書)의 아들 복성인(卜成仁)이 몇 차례 음모를 꾸며 그녀를 강제로 취하려 했으나,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이를 물리친다. 복씨는 다시 ‘이화접목(移花接木)’의 계략을 써서 이복 여동생 홍사(紅絲)를 장손에게 접근시키지만 역시 실패한다. 이후 장손소는 과거에 방안(榜眼)으로 급제하고, 황제의 명에 따라 관청미와 혼인한다. 홍사 역시 첩으로 들어오고, 두 여성은 함께 한 남편을 섬기게 된다.

이 작품은 구조가 치밀하고 문장이 간결하며, 줄거리가 흥미진진하다. 특히 관청미는 용기와 판단력을 갖춘 신여성형 인물로 그려지면서, 기존의 ‘재주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이상형에 더해 새로운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장손소의 허장성세, 복성인의 교활함, 강지량(强之良)의 음험함, 이지현(李知縣)의 세속적 이기심 등 인물의 성격도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호구전(好逑傳)》은 다른 이름으로 《협의풍월전(俠義風月傳)》이라 하며, 총 18회로 구성되어 있다. ‘명교중인(名教中人)이 편차함’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실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필명이 뜻하듯, 저자는 비교적 보수적인 유학자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는 “비록 규방의 좋은 짝을 잃을지언정, 유교적 도리를 어기는 죄인은 되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봉건적 예교 질서를 확고히 수호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야기 속 재자 철중옥(鐵中玉)은 의협심이 강하고 의로움을 숭상하며, 가인 수빙심(水冰心)은 용기와 지혜를 갖춘 여성으로 그려진다. 수빙심의 숙부 수운(水運)은 재산을 탐내어 학사 자고(子過)를 시켜 여러 차례 그녀를 납치하려 하였으나, 빙심은 매번 계략을 간파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세 번째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마침 중옥(中玉)이 유학 도중 현장을 지나며 그녀의 비명을 듣고 구출하게 된다. 이후 중옥은 병을 앓자, 빙심은 정성껏 그를 간호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품지만, 예절을 철저히 지켜 단 한 마디 사사로운 말조차 나누지 않는다. 결국 명에 따라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지만, 끝내 동거하지 않는다. 황제가 황후에게 명하여 수빙심이 실제로 정절을 지켰는지를 확인하게 한 후, 다시금 혼례를 치르게 하고 명분과 교화의 정당함을 드러내게 한다.

작품 제목은 《시경(詩經)》의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이 소설은 봉건 예교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지만, 동시에 관료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폭로하고, 의로움을 실천하며 권세에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는 고결한 인물상을 찬미함으로써 일정한 긍정적 의미도 담고 있다. 작품은 구조가 치밀하고 줄거리가 단단하며 문장은 생동감 있고, 표현은 간결하며 인물의 개성 또한 뚜렷하다. 재자는 의협심이 강하고 용감하며, 가인은 총명하고 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시재(詩才)가 아닌 다른 덕목으로 부각된다는 점에서 동시대 유사 작품들과 차별성을 보였다. 오항야객(吳航野客)의 《주춘원(駐春園)》에서도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였다. “《호구전(好逑傳)》은 독자적인 기획으로 통속적인 운율을 벗어났으며, 마치 진(秦)나라 계통의 편작자처럼, 스스로 붉은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 루쉰은 이 작품을 두고 “문장이 훌륭하고, 인물의 성격 또한 어느 정도 독창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18세기 초에 이 소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번역되었으며, 유럽에 가장 먼저 알려진 중국 고대 소설 중 하나였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역시 이 소설을 읽고 크게 칭찬한 바 있다.

(3) 재자가인 소설의 서사 구조

재자가인 소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하는 동안 하나의 고정된 서사 구조를 형성하였으며, 이 소설 유파의 뚜렷한 특징이 되었다. 비록 그 기원은 잡극, 화본, 문언 소설 등에 두고 있지만, 장회체 소설로서는 그 구조와 형상이 여전히 참신하고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작가들이 이 틀을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전형화되고 상투적인 틀이 되어버렸다. 이후 여러 작가들이 이러한 틀을 깨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재자가인 소설의 기본 서사 구조는 명확한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한눈에 반함, 시문을 주고받으며 사랑이 싹튼다.

둘째, 인연을 가로막는 장애, 그러나 서로의 마음은 변치 않는다.

셋째, 과거에 급제, 마침내 결혼에 이른다.

인물과 시간, 공간이 아무리 바뀌어도 서사의 전개는 늘 이 ‘3단 구성’을 따른다. 다음에는 후기 작품들의 예를 들어 각 단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로, 재자와 가인의 첫 만남 방식은 다음과 같이 여러 유형이 있다.

우연한 조우: 예를 들어 《오강설(吳江雪)》에서는 강조(江潮)가 지형산(支硎山)에 기도하러 가는 길에 오원(吳媛)을 만나고, 《금운교전(金雲翹傳)》에서는 금중(金重)이 청명절에 나들이하다가 유담선묘(劉淡仙墓)에서 취초(翠翹), 취운(翠云) 자매를 만난다.

명성을 듣고 찾아감: 주로 재자가 먼저 행동한다. 예를 들어 《평산냉연(平山冷燕)》에서는 연백함(燕白頷)이 산대(山黛)의 시재를 겨루기 위해 상경하고, 《양교혼(兩交婚)》에서는 감이(甘頤)가 여장을 하고 신고차(辛古釵)와 시를 주고받는다.

장기 체류하며 사랑이 싹트는 경우: 예를 들어 《인아보(麟兒報)》에서는 염청(廉清)이 행부(幸府)에 오래 머무르며 소화(昭華)와 정을 나누고, 《새홍사(賽紅絲)》에서는 배송(裴松), 배지(裴芝) 형제가 송채(宋采), 송라(宋蘿) 자매와 함께하며 사랑이 싹튼다.

영웅이 미인을 구함: 《호구전(好逑傳)》에서는 철중옥(鐵中玉)이 수빙심(水冰心)을 구하고, 《쾌심편(快心編)》에서는 석패형(石珮珩)이 구취초(裘翠翹)를 구해낸다.

이처럼 어떤 방식으로 만나든, 둘은 첫눈에 반하게 된다. 중간에 이들을 이어주는 매개자는 대부분 시녀이지만, 때로는 중매쟁이 혹은 친구도 된다. 약속 장소는 대개 후원(後園) 즉, 뒷마당 정원이다.

두 번째 단계인 인연을 가로막는 장애의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흔한 유형은 악인의 개입이다. 예컨대 《옥지기(玉支玑)》의 복성인(卜成仁), 《정정인(定情人)》의 혁염(赫炎) 등이 그런 예다. 또는 일부 소설에서는 여인의 부모가 예법에 얽매이거나 가난을 싫어하여 억지로 장애를 만들어낸다. 《염량안(炎凉岸)》에서는 풍국사(冯国士)가 가난을 이유로 혼사를 파기하고, 《고산재몽(孤山再梦)》에서는 만종(萬鍾)이 풍속을 해친다 하여 결혼을 거절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시대의 혼란과 운명의 장난이 이별을 가져온다. 《금향정(锦香亭)》에서는 안사의 난으로 인해 종경기(鍾景期)와 갈명하(葛明霞)가 떠돌며 고난을 겪고, 《금운교전(金云翘传)》에서는 삭막한 세태와 얄팍한 인간관계로 인해 왕취초(王翠翘)가 화를 입고 깊은 수렁에 빠진다. 이 단계는 재자가인 소설의 중심 줄거리이며, 이야기 전개가 신선하고 감동적인가, 내용이 풍부하고 깊이가 있는가, 그리고 서술 기법이 원숙한가 하는 평가가 모두 이 부분에서 판가름 난다. 작품에 따라 사회 현실이나 전쟁 등을 반영하는 소재의 확장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세 번째 단계는, 재자가 과거에 급제하고, 가인과 혼례를 올리며 평생의 연을 맺는 것으로 끝맺는다. 제2단계에서 아무리 파란만장한 전개가 있었다 하더라도, 마지막은 반드시 이 ‘대단원의 결말’로 귀결된다. 종결부에서는 재자가 출세해 관직에서 성공하고, 가인은 자녀를 많이 낳아 가문이 번창하며, 자손 대대로 과거 급제를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혹은 재자가 벼슬길을 스스로 버리고 아내와 은거하며 조용한 삶을 즐기기도 하지만, 자손들은 여전히 과거에 급제해 명문가의 전통을 잇는다.

재자와 가인의 인물 형상도 일정한 틀을 가진다. 요약하자면, ‘재색을 겸비(才貌雙全)’한 존재로 묘사된다. 재자의 용모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진다. 얼굴은 흰 분을 바른 듯하고, 눈빛은 밝은 별처럼 빛나며, 바람 속에 우뚝 선 옥나무처럼 당당하고 우아하다. 이러한 모습은 여인의 마음을 흔들며, 첫눈에 반하게 한다. 특히 많은 재자들은 여장을 하고도 정체를 들키지 않을 정도로 외모가 출중하다. 예컨대 《오강설(吳江雪)》의 강조(江潮), 《양교혼(兩交婚)》의 감이(甘頤), 《고산재몽(孤山再夢)》의 전우림(錢雨林) 등이 있다. 그들의 재능은 특히 시문을 통해 강조되며, 과거 급제를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된다. 이러한 시재와 외모는 제1단계에서 애정이 싹트는 핵심 근거이며, 제3단계에서 그 성과가 결실을 맺는다. 시간이 흐르며 재자의 형상에도 변화가 있었다. 시문뿐만 아니라 무예로 이름을 떨치거나 군공으로 벼슬길에 오르는 유형도 나타났는데, 예컨대 《쾌심편(快心编)》의 유준(柳俊)과 석패항(石珮珩), 《화도연(畫圖緣)》의 화천하(花天荷)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은 청초(淸初)에는 주류로 자리 잡지 못했다.

가인은 하나같이 국색천향(國色天香), 경국지색(傾國傾城)의 미모를 자랑하며, 이들 또한 시재가 뛰어난 인물로 묘사된다. 이 시재는 재자가 감탄하고 사랑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몇몇 가인은 재기뿐 아니라 기개와 담력을 갖춘 인물상도 등장했는데, 《호구전(好逑传)》의 수빙심(水冰心), 《옥지기(玉支玑)》의 관청미(管青眉) 등이 그 예로, 이는 기존의 이상적 여성상에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재자가인 소설의 주인공들은 출신 지역과 가문에 있어서도 공통된 특징을 보였다. 출신 지역은 대부분 남방, 특히 강남과 절강 지역에 집중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작가들 다수가 강남·절강 출신이었고, 둘째, 이들 지역은 명청 양대 왕조에 걸쳐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었다. 왕사정(王士禎)의 《지북우담(池北偶谈)》에 따르면 청초 강남 지역에서 과거 급제자가 특히 많았으며, 소주 한 지역에서만 회원(會元) 여섯 명, 장원(狀元) 일곱 명이 나왔다고 한다. 이는 등장인물의 출신 설정이 사회 현실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문 면에서 보자면, 재자가인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명문가 출신의 상류층 자제로 설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 작품의 작가들은 대부분 하층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상류층 생활에 대한 체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인물 묘사에서 현실감이 떨어지고, 인물상 또한 지나치게 유사하고 개념적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다. 이 점이 재자가인 소설 인물 형상의 개념화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었다.

(4) 명청 시기 재자가인 소설의 사상적·예술적 특징과 영향

무엇보다 재자가인 소설은 작가 개인의 감정과 사상을 주관적이고 이상화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천화장주인(天花藏主人)은 《평산냉연서(平山冷燕序)》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때를 만나지 못해, 비록 아름답고 찬란한 문장을 써 보았으나, 세상 사람들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늙고 말았구나. 몸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기운을 꺾고 삶을 버리자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갈 바를 몰라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우유선생(烏有先生)’을 빌려 헛된 꿈 같은 일을 토로하게 되었다.”

이처럼 재자와 가인의 형상은 작가의 자아 인식을 담은 상징이었으며, 작가가 현실을 바라보며 품은 소망과 감정의 투사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 소설의 사상적 의미는 대부분 작가 개인의 사유 수준에 달려 있었다.

다음으로, 만력 이후 전개된 진보적 애정관과 결혼관의 영향을 받아, 재자가인 소설은 다양한 정도로 젊은 남녀 사이의 ‘진실하고 순수한 감정’을 긍정하며, 오랫동안 뿌리내린 ‘부모의 명령과 중매의 말’이라는 전통 예법에 일정한 충격을 가했다. 천화장주인은 《정정인서(定情人序)》에서 특히 ‘정(情)’의 힘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이 정해지면 마치 쇠를 끌어당기는 자석 같아서 떼어 놓을 수 없고, 물이 아래로 흐르듯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정이 이미 맺어졌는데, 그 후에 다시 딴마음을 품거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옮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많은 재자(才子)는 좋은 배필을 찾아 먼 길을 떠나고, 많은 가인(佳人)은 부모나 중매인의 말 없이 스스로 연인을 만나러 나아갔다. 이는 젊은 남녀가 사랑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모습을 비교적 충분히 드러내고 있으며, 그들의 사랑에 대한 집착과 절개를 찬미함으로써 진보적 혼인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옥교리(玉娇梨)》에서 소우백(蘇友白)은 앞날을 포기하더라도 정략결혼에는 순응하지 않으며, 벼슬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이상적인 결혼을 추구하고자 한다. 여주인공 노몽리(盧夢梨)는 스스로 남편을 선택할 용기를 지녔고, 소우백과 만나 곧바로 평생을 약속했다. 그녀는 정혼과 중매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절세의 여인이 부모에게 얽매이고, 중매인의 실수로 잘못된 결혼을 하여, 한 번도 풍류 있는 재자를 만나보지 못한 채 원통하게 혼자 시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평산냉연(平山冷燕)》의 연백함(燕白頷)과 평여형(平如衡)도 각자 짝을 찾기 위해 거의 미칠 듯한 정열을 쏟아부었다. 《춘류앵(春柳鶯)》의 석지재(石池齋)는 “삼백 냥의 더러운 은전 때문에 평생 대사를 팔 수는 없다”며 거절한다.

또한 재자가인 소설은 재능, 감정, 외모를 짝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가문 중심의 혼인 관념에 대한 강한 도전이었다. 특히 일부 작품은 ‘재치와 감성’의 가치를 강조하며, 여성의 재능과 용기를 대대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여자는 재능이 없어야 미덕이다(女子無才便是德)’라는 봉건적 여성 관념을 일정 정도 부정한 것이며, 남존여비의 전통 인식에 도전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여러 작품에서 가인의 재능과 용기가 오히려 재자보다 뛰어나기도 하다. 이러한 묘사는 과거의 나약한 여성상을 벗어나, 여성을 보다 독립된 인격체로 그려내고 있다. 《호구전(好逑傳)》의 수빙심(水冰心)은 “규방에 있을 때는 비단옷조차 감당 못 하던 사람이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자 재능과 용기를 발휘하여 남자도 능가했다”고 묘사된다. 그녀는 혼자 집안을 지키며, 강제로 혼인시키려는 공자, 재물을 탐하는 숙부, 사태를 회피하는 현령, 사사로운 정에 얽힌 임시 관리들과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과연 “귀신도 예측하지 못할 책략”을 지닌 인물이었다. 《춘류앵(春柳鶯)》의 관동수(管彤秀) 또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억지로 해외에 파견되자, 스스로 지혜로 강제로 혼인하려는 복성인(卜成仁)을 여러 차례 물리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적인 사상은 상당히 모호하며 때로는 스스로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그 소극적인 면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재자와 가인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고 정을 맺었든, 혼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심지어 황제의 명령으로 결혼이 성사되곤 한다. 이처럼 지나치게 이상화된 결말은 작가가 전통적인 혼인제도에 대해 여전히 미련과 환상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실상 이는 작가의 봉건적 도덕관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결과였다. 예를 들어 《호구전(好逑傳)》에서 철중옥(鐵中玉)과 수빙심(水冰心)은 명교(名教) 사상에 얽매여, 마음속의 사랑을 억눌렀으며, 심지어 “부모의 명령과 중매인의 말”로도 사회 여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지 못했다. 결국 황후의 신체 검사와 황제의 하명이라는 절차를 거쳐야만 혼인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묘사는 지나치게 꾸며낸 인상을 준다.

둘째, 이 소설들이 과시하는 입신양명 사상은, 문벌 제도를 비판하려는 취지를 오히려 약화시켰다. 여주인공이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은 남자 주인공이 반드시 출세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자가 연애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과거 시험에 합격해야만 한다. 이것은 ‘재능’을 강조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신분’과 ‘지위’, ‘명예’를 중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묘사에서 작가는 단지 신분 질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제도 자체를 미화하고 있다. 다만 강희 시기의 《여개과전(女開科傳)》처럼 과거제도를 풍자하는 예외적 작품도 있었지만, 이는 주류는 아니었다.

셋째, 소설 속에서 혼인에 장애를 주는 ‘소인’(小人)을 설정하는 방식은 이야기 전개에 파란을 일으키고, 당시의 험악한 세태나 인간관계를 반영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는 실제로는 봉건 혼인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혼인 문제의 본질적 갈등을 흐리는 결과를 낳는다. 마치 청춘 남녀의 혼인 고난이 오직 이런 소인들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그려지기 때문이다.

재자가인 소설의 주요한 예술적 특색으로는, 첫째, 3단 구성의 공식화된 구조, 둘째, 재능과 외모를 겸비한 전형적인 인물 묘사, 셋째, 기이하고 정교한 이야기 구성, 넷째, ‘꽃처럼 곱고 달처럼 아름다운(花娇月媚)’ 미학적 분위기를 들 수 있다. 앞의 두 가지는 이미 논한 바 있고, 여기서는 뒤의 두 가지 특징에 대해 설명하겠다.

작가들은 이야기를 정교하게 짜내는 데 능했으며, 소설의 분량은 짧고, 읽기 쉽고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작가들의 의식적인 예술적 추구의 결과였다. 예를 들어 고월소담도인(古越蘇潭道人)은 《오봉음서(五鳳吟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의 사람들은 도의(道義)를 말하는 책을 보면 눈꺼풀이 감기고, 풍류와 우아한 문장을 담은 책을 보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왜 그런가? 엄정하고 뜻있는 말은 사람의 고통을 풀어주지 못하지만, 부드럽고 화려한 표현은 비록 속된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진실한 감정이 담겨 있어 사람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신기하고 기묘한 서사를 짜내며 줄거리의 기묘함과 정교함에 공을 들였다. 연수산인(煙水散人)은 《새화령제사(賽花鈴題辭)》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볼 때 소설가는 기이하지 않으면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기이함이란 공허한 환상이나 신선·귀신을 말하는 데 있지 않고, 붓끝에서 생겨나는 변화와 굴곡진 이야기 속에 있다.”

소설의 이러한 기이함과 정교함은 특히 줄거리의 연극적 효과, 즉 감정의 기복과 극적인 반전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야기 전개에서는 우연, 오해, 뜻밖의 사건, 계략 등의 장치를 능란하게 활용하여 줄거리를 흥미롭게 구성하고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러한 기법은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독서물로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으며, 이는 고대 소설 예술에 있어 재자가인 소설이 기여한 긍정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재자가인 소설의 문체는 맑고 우아하며, 문인적 색채가 짙다. 장죽파(張竹坡)는 《금병매독법(金瓶梅讀法)》에서 “《금병매》가 만약 그 당시 저속한 시정 문체로 쓰이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화교월미(花嬌月媚)’한 운문을 펼쳐 《서상기(西廂記)》 같은 작품을 썼을 것”이라고 평했다. 여기서 말하는 ‘화교월매’란 곱고 은은한 문체를 뜻하며, 재자가인 소설은 바로 그러한 ‘꽃처럼 곱고 달처럼 아름다운’ 분위기의 운문으로, 《서상기》가 유행시킨 풍류 ‘가화(佳話)’를 계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사상적으로는 이상주의적 색채가 짙고, 언어적으로는 문언문 비중이 높으며, 관용어와 문어체 표현이 많아 생활적 현실감은 떨어진다. 이는 세속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정서(世情書)’ ― 곧 ‘금병매’와 같은 시정 문학의 문체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정반대의 미학 양식을 보여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재자가인 소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작품이 창작되었으며, 중국 소설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창작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 소설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혼인, 여성에 대한 관점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측면이 있으며, 그로 인해 문학사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장르의 유행은 소설 창작 풍토 자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청대 초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의 독립적인 정신적 산물로, 문인의 자율적 창작이라는 뚜렷한 특성을 지녔다. 이들 가운데 일부 작가, 예컨대 천화장주인(天花藏主人)은 소설사적으로 ‘전업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는 소설 창작 역사에 있어 새로운 국면이었다. 문인의 자발적 창작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은 이미 명 중엽의 《금병매》에서 시작되었으나, 명말의 시사소설들은 여전히 시국에 얽매인 보도체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완전히 자율적 상상력에 기반한 창작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러던 중 청초 재자가인 소설이 대량으로 등장함으로써, 문인의 독립 창작이 하나의 일반적 현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점에서 재자가인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또한, 재자가인 소설은 오랜 기간 독자들의 미적 취향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희곡·소설·탄사(弾詞, 가사체 소설) 등 각종 대중문학 장르에 재자와 가인 형상이 반복 출현하였으며, 해피엔딩(大團圓)의 결말은 시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흔히 반복되었다. 청 중엽에 이르러 재자가인 소설의 발전 흐름은 점차 쇠퇴했으나, 여전히 적지 않은 작품이 계속 창작되었다. 이처럼 전형화된 관습에 대해 조설근(曹雪芹)은 그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홍루몽(紅樓夢)》이라는 위대한 비극 문학을 집필하였으며, 이는 재자가인 소설이 결코 넘볼 수 없는 경지였다. 그러나 재자가인 소설에 익숙해진 당대 독자들은 《홍루몽》이 담고 있는 진정한 정신적 핵심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였다. 많은 이들이 《홍루몽(紅樓夢)》을 재자가인 소설의 형식과 문체에 맞추어 다시 쓰려 하였고, 《홍루몽》의 비극적 결말에서 느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른바 ‘한(恨)을 보충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속편, 속작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원작의 깊은 비극성과 정신적 풍모를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저급한 희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재자가인 소설이 그 시대 문학과 독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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