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역사 연의 소설의 발전
장회 역사 연의 소설은 송나라의 강사(講史)에서 발전한 것으로, 중국 고대 소설 중에서 민족적 특색이 가장 풍부한 큰 유파이다.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는 그 토대를 놓은 작품이다. 명나라 중엽에 이르러 모방하는 사람들이 잇따라 일어나 역사 연의 소설 창작의 열풍을 일으켰다. 가관도인(可觀道人)은 《신열국지서(新列國志敘)》에서 말했다. “나관중의 《삼국지》 한 권의 책이 국사를 통속 연의로 풀어내어 방대하게 백여 회나 되어 세상에서 숭상받았다. 이후 모방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 《하서(夏書)》, 《상서(商書)》, 《열국(列國)》, 《양한(兩漢)》, 《당서(唐書)》, 《잔당(殘唐)》, 《남북송(南北宋)》 등의 작품이 나왔으니, 그 방대함이 거의 정사와 나란히 책장에 꽂힐 정도였다.” 명청 교체기에도 그 맥이 끊이지 않고, 체제와 규모 면에서 전면적으로 성숙한 형태로 발전했다.
(1) 명청 교체기 역사 연의 소설의 변화
숭정(崇禎)·순치(順治) 연간의 역사 연의 소설은 손개제(孫楷第)의 《중국 통속 소설 서목(中國通俗小說書目)》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거의 30종에 달한다. 비교적 유명한 작품으로는 《수양제염사(隋煬帝艷史)》, 《수사유문(隋史遺文)》, 《손방투지연의(孫龐鬥志演義)》, 《경세음양몽(警世陰陽夢)》, 《수올한평(壽杌閒評)》, 《초사통속연의(樵史通俗演義)》 등이 있다. 명나라 중엽의 역사 연의 소설과 비교해 볼 때, 이 작품들은 소재와 체제 모두에서 발전과 변화를 보였다.
소재 면에서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 전후로 “동원관중 나본 편집(東原貫中羅本編輯)”이라는 제목이 붙은 《수당양조지전(隋唐兩朝志傳)》, 웅대목(熊大木)이 편집한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와 《대송중흥통속연의(大宋中興通俗演義)》, 여소어(余邵魚)가 편집한 《열국지전(列國志傳)》 등 다양한 역사 연의체 소설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대부분 사서와 역사 기록을 참고하여 보충하고 역사 이야기를 주로 다루면서 “사서를 보좌하는(羽翼信史)” 작품임을 표방하여 문체가 평이하고 사실에 가까워 문학성은 비교적 떨어졌다. 숭정 연간에 창작된 일부 역사 연의 소설, 예를 들어 《수양제염사》, 《수사유문》 등은 단순히 “사서와 역사 기록을 참고했을 뿐만 아니라” 야사, 필기, 민간 전설의 내용까지 흡수하여 이야기의 줄거리를 풍부하게 만들고 “역사 기록에 따라 연의를 짓는(按鑒演義)” 틀을 벗어나 역사적 사실에 가까우면서도 문학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전자는 수양제의 기이하고 화려한 일생을 서술한 것으로, 역사적 소재를 활용하여 역사 연의 소설로 성공적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후자는 책 전체가 황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고, 초야의 영웅인 진경(秦瓊) 등의 “기이한 감정과 협객의 기개, 뛰어난 풍류와 영웅적인 풍모”를 집중적으로 묘사하여, 제목은 전사(全史) 연의이지만 실제로는 진경의 전기이다. 황제 중심의 묘사에서 하층 영웅 인물 중심으로 전환된 《수사유문》은 이 시기 역사 연의 소설 창작의 전환 방향을 대표하며, 이는 역사 연의 소설의 큰 변화 중 하나이다.
체제 면에서 명청 교체기에는 신마(神魔) 괴이(怪異) 소설과 인정세태 소설 모두 탐색하고 발전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역사 연의 소설은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완전히 “역사 기록에 따라” 역사를 이야기했지만, 대부분 신괴 소설 등 다른 유파와 서로 모방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몇 가지 새로운 변화를 보였다. 첫째, 일부 역사 연의 소설은 많은 신괴 이야기를 삽입하여 줄거리를 확장했다. 예를 들어 《손방투지연의(孫龐鬥志演義)》는 전국 초기 손빈(孫臏)과 방연(龐涓)이 지략을 겨루는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장식처럼 활용하고, 신비롭고 기이한 현상에 대한 묘사를 섞어 인물의 행적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 둘째, 일부 역사 연의 소설은 인정세태 소설의 내용을 혼합하여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도올한평(梼杌閒評)》은 명나라 희종(熹宗) 때 환관 위충현(魏忠賢)이 희종의 유모 객인월(客印月)과 결탁하여 권력을 휘두르고 정치를 어지럽힌 이야기를 서술하여 만력 말년부터 숭정 초년까지 일련의 조정의 주요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반영했으며, 많은 부분이 역사 기록과 상호 참고할 만하다. 소설의 앞부분 20회는 위충현이 입궁하기 전의 저잣거리 생활을 묘사하여 세태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 인정 소설의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또 다른 예로 《초사통속연의(樵史通俗演義)》는 위충현이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괴롭힌 이야기와 이자성(李自成)의 봉기 이야기를 서술하며 명나라 천계(天啓), 숭정(崇禎), 홍광(弘光) 세 황제의 정치적 일화를 다루는데, 대부분 작가가 직접 보고 들은 역사적 사실이라 비교적 신뢰할 만하며 명나라 말기 역사를 전체적으로 반영한다. 동시에 책 속에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세태와 풍속을 묘사하고 작가의 감회를 담았다. 따라서 맹삼(孟森)은 《중인초사통속연의서(重印樵史通俗演義序)》에서 이 책을 “명나라 유민이 사실적으로 쓴 작품이되, 통속적인 형태로 몸을 숨긴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시대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역사 연의 소설과 인정세태 소설이 합류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작품 범주 면에서 명청 교체기에는 사회가 동요하고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 사람들이 국가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당면한 중대한 정치 사건을 즉시 알고 싶어 했고, 이에 따라 일련의 시사(時事) 소설이 등장했다. 순치 연간 경운루(慶雲樓)에서 간행한 《신세홍훈(新世鴻勳)》의 표지에는 “역적 이자성(李自成)의 난의 원인을 상세히 기록하고, 대청(大淸)의 평정 과정을 공손히 기록했다. 비록 큰 사건들이 많으나 서술에 질서가 있고, 소설이지만 권선징악의 경고가 있다. 세상의 도덕과 인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의 지식인들은 부디 살펴주시길 바란다.”라는 광고문구와 같은 ‘식어(識語)’가 실려 있어 사람들이 정치 시사에 관심을 갖는 심리를 반영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이야기의 성격과 뉴스의 성격을 겸비한 역사 연의체 소설의 새로운 장르였다. 쟁소주인(崢霄主人)은 《위충현소설척간서(魏忠賢小說斥姦書)》 ‘범례(凡例)’에서 “이 책은 정치 사무와 관련되고, 내용은 상소문과 관련된다”라고 명시하여 이러한 소설의 내용상 특징을 밝혔다. ‘시사(時事)’라는 명칭은 아마도 연극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기표가(祁彪佳)의 《원산당곡품(遠山堂曲品)》은 희곡 《전신기(錢神記)》를 평하여 “직접적으로 시사를 풍자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고 했고, 《고충기(孤忠記)》를 평하여 “기껏 위충현 당시의 사건을 가져와 이야기했다”라고 하여 시사를 즉시 반영했다는 특징을 강조했다. 공상임(孔尚任)은 《연대잡흥사십수(燕台雜興四十首)》 스스로 주를 달아 “태평원(太平園)은 지금의 이원(梨園)에 해당한다. 매번 시사를 들으면 새로운 곡조를 얻었다”라고 설명하여 명말청초에 시사를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극단 조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후세 사람들은 명청 교체기의 정치 역사 사건을 반영한 이러한 극 작품을 ‘시사극(時事劇)’ 또는 ‘시사희(時事戱)’라고 부르고, 이와 동시에 생겨나 제재와 내용이 대체로 비슷한 통속 소설을 ‘시사 소설’ 또는 ‘신문(新聞) 소설’이라고 부른다. 체제적으로 볼 때 시사 소설은 실제로 송원 시대의 강사(講史)에서 파생된 것이다. 중국 소설은 예로부터 국가의 중대사를 즉시 서술하는 전통이 있었다. 내득옹(耐得翁)의 《도성기승(都城紀勝)》과 오자목(吳自牧)의 《몽량록(夢粱錄)》에 따르면 송나라의 ‘설화(說話)’ 네 종류 가운데 ‘설철기아(說鐵騎兒)’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주로 송나라 농민 봉기나 금나라, 요나라에 항거한 영웅들의 전설과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명말청초에 발생한 시사 소설은 실로 역사 연의 소설의 큰 분파로서 역사 소설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위에서 언급한 역사 연의 소설의 이러한 변화는 소설 예술 발전의 필연적인 추세이자 독자들이 소설 창작에 요구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명나라 중엽 이후 장회 소설의 창작은 활발하게 발전했다. 작가들은 작품의 흡인력을 높이기 위해 단순히 왕후장상의 역사를 나열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시대와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역사 소설의 구도를 의도적으로 개혁했다. 그리하여 역사 연의체 소설에 세태인정을 주입하고 초자연적 존재를 섞어 넣었으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문학과 독자 사이의 정신적 연결을 강화했다. 원우령(袁于令)은 그의 《수사유문서(隋史遺文序)》와 소설의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기를, “이 소설을 창작한 목적은 ‘잊힌 이야기들을 찾고(搜逸)’, ‘기이한 이야기를 엮는 것(传奇)’에 있으며, 초점은 초야의 영웅인 진경(秦瓊) 등의 ‘공훈과 위업’을 칭송하는 데 있지 않다”라고 했다. 오히려 그는 전통적인 서사 형식을 벗어나, 이들의 ‘미천하던 시절의 삶’을 정성껏 묘사하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정사(正史)에는 실릴 수 없고, 세상 사람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일종의 기이한 이야기’로 엮어낸 것이다.” 훗날 저인획(褚人獲)이 《수당연의(隋唐演義)》를 “모아서 편집(匯編)”하면서 《遺文》의 내용을 많이 참고했다. 그러나 그는 서문에서 단순히 옛날 기록을 삭제하고 보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시대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운치를 더하여 표현하였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일부 역사소설 작가들이 단지 내용을 다듬고 정사에 의존해 기존 작품을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치 있고 흥미로운 소재를 적극적으로 수집해 작품을 풍부하게 하고,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2) 명청 교체기 역사 연의 소설의 종류
이 시기의 역사 연의체 소설은 옛 작품을 개작하거나 수정하기도 하고, 일부 왕조 역사의 부족한 부분을 속편이나 보충편으로 채우기도 하며, 새로운 길을 탐색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기도 했는데, 주요 종류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속보전서류(續補前書類)로, 대표 작품으로는 숭정 연간의 《악무목정충보국전(岳武穆精忠報國傳)》과 《손방투지연의(孫龐鬥志演義)》 두 작품이 있다. 순치 연간에는 다시 《낙전연의(樂田演義)》 18회가 나왔는데, ‘고오연수산인 연집(古吳煙水散人演輯)’이라 표기되어 있다. 연수산인은 아마도 청나라 초기의 소설가 서진(徐震)일 것이다. 소설은 악의(樂毅)와 전단(田單)을 중심으로 전국 후기 연나라와 제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이야기를 서술하며, 작가의 불만과 이상을 담고 있다. 묘사는 사료에 근거하여 신비롭고 기이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았다. 《손방투지연의》와는 스타일이 매우 다르지만, 두 책의 소재는 연관성이 있다. 강희 5년(1666년) 서점에서는 두 책을 합쳐 《전후칠국지(前後七國志)》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는데, 이는 속보전서류의 한 유형이다. 둘째는 왕조보궐류(王朝補闕類)이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 세상에 나온 후 역대 강사 소설이 끊임없이 등장했는데 어떤 것은 전시대로 확장되어 《전한지전(全漢志傳)》, 《열국지전(列國志傳)》 등이, 어떤 것은 아래로 확장되어 《수당양조지전(隋唐兩朝志傳)》, 《잔당오대사연전(殘唐五代史演傳)》, 《남북양송지전(南北兩宋志傳)》 등이 같이 나와 22사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다 서술되었다. 역사 연의 소설 창작의 소재는 날로 좁아졌다. 일부 작가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역사적 단면을 선택하여 “한 왕조의 특정 시기의 일과 한 장수와 한 재상의 공을 상세히 드러내고”, 이야기를 부풀리고 과장해 가며 책으로 엮어 일부 역사적 단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앞서 언급한 《수양제염사(隋煬帝艷史)》와 《수사유문(隋史遺文)》은 이러한 유형의 소설에 해당할 것이다.
그 소재 내용으로 볼 때, 당대의 “시무(時務)”를 서술한 시사 소설이 비교적 유행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숭정(崇禎)과 순치(順治) 두 왕조에 걸쳐 약 20여 종이 있었고, 간행본이나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것은 16~17종이다. 그중 약 8종은 숭정 시기에 완성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순치 연간에 창작되었다. 소재 내용은 명청 교체기의 거의 모든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포함한다. 창작의 발전 측면에서 볼 때 대략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숭정(崇禎) 시기이다. 천계(天啓) 연간에 환관 위충현(魏忠賢)이 권력을 독점하여 정치를 어지럽히고, 무고한 사람을 마구 죽이는 등 횡포를 부렸다. 숭정제가 즉위한 뒤, 환관 세력이 몰락하고 동림당(東林黨) 인사들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 시기의 시사 소설은 주로 위충현과 그 추종자들이 나라를 망친 죄악을 고발하는 내용에 집중됐다. 이 같은 내용을 가장 먼저 다룬 시사 소설은 장안도인(長安道人) 국청(國淸)이 지은 《경세음양몽(警世陰陽夢)》이며, 이어서 오월초망신(吳越草莽臣)이 쓴 《위충현소설척간서(魏忠賢小說斥奸書)》와 서호의사(西湖義士)가 지은 《황명중흥성렬전(皇明中興聖烈傳)》 등이 등장했다. 이 중 환관 세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도올한평(梼杌閒評)》이다.
또한 숭정 연간에는 요동(遼東) 지역에서 일어난 후금(後金)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져 빈번히 병사를 남쪽으로 보내면서 명나라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이에 따라 요동 지역의 사건을 다룬 시사소설도 등장했는데, 《요동전(遼東傳)》, 《진해춘추(鎭海春秋)》, 평원고분생(平原孤憤生)이 지은 《요해단충록(遼海丹忠錄)》, 음소주인(吟嘯主人)이 지은 《근보총담평로전(近報叢譚平虜傳)》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남명(南明)의 홍광(弘光) 연간 전후 시기이다. 숭정 17년(1644), 이자성(李自成)의 농민군이 명나라를 무너뜨렸다. 이 엄청난 역사적 변화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곧 이자성의 농민 반란과 갑신(甲申)년 사건을 다룬 새로운 시사 소설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갑신통사(甲申痛史)》와 《신편초창통속소설(新編剿闖通俗小說)》 등이 있는데, 특히 후자는 이자성의 이야기를 다룬 최초의 소설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이창소사(李闖小史)》 또는 《고충오평서괵창소사(孤忠吳平西馘闖小史)》라고도 불리며, 전 10권으로 구성되었다. 앞의 다섯 권은 서오란도인(西吳懶道人)이 구술했고, 뒤의 다섯 권은 윤주호로도인(潤州葫蘆道人)이 집필했으나, 이들의 본명은 전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홍광 원년(1645)에 쓰였으며, 이자성의 난을 연대기적 방식으로 서술했다. 소설은 이암(李岩)이 군사를 일으킨 것으로 시작하여 오삼계(吳三桂)가 농민군을 격파하고 홍광제에게 승전보를 올리는 것으로 끝난다. 저자는 이자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이암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책 뒤에는 문서, 상소, 시와 주석 등 다양한 자료들이 혼재되어 있어 서술이 다소 어수선하고 문체도 세련되지 못하다. 그러나 당대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여 사료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데 가치가 있다. 《갑신핵진략(甲申核真略)》의 서문에서는 곽말약(郭沫若)의 말을 인용하기를, “이 책의 기록은 《명계북략(明季北略)》과 상당히 일치하며, 후자는 심지어 이 책의 내용을 일부 참고한 흔적도 있다”고 하였다.
셋째는 순치(順治), 강희(康熙) 연간이다. 명(明) 왕조가 멸망한 후, 청(淸)이 중원을 차지했다. 강남(江南)의 명나라 유민들은 한편으로는 옛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용감한 항청(抗淸) 투쟁을 전개했는데, 소설 《해각유편(海角遺篇)》과 《칠봉유편(七峰遺編)》 등은 바로 그들의 반청복명(反淸復明)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망국의 치욕을 잊지 못한 채 이자성(李自成)의 농민군을 계속 저주했다. 소설 《신세홍훈(新世弘勳)》, 《철관도(鐵冠圖)》 등은 바로 이러한 농민군에 대한 증오를 반영한 작품들이다.
《해각유편》과 《칠봉유편》은 강남 지역 사람들의 청나라 지배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특색 있는 두 작품이다. 《해각유편》을 혹자는 《칠봉유편》의 다른 이름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두 작품은 상당히 다르다. 《해각유편》은 30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자는 밝혀져 있지 않다. 또 다른 판본은 1권 본편과 1권 속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유야사찬(漫遊野史撰)」으로 표기되어 있다. 순치 연간의 필사본이 존재하며, 소설은 날짜를 중심으로 사건을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은 주로 순치 2년(1645) 2월부터 9월까지 상숙현(常熟縣)에서 엄식(嚴栻)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들의 항청 봉기와 청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는 비장한 모습을 묘사했다. 이 책은 작자의 직접적인 견문을 근거로 저술하여 사료적 가치가 크다.
《칠봉유편》은 총 2권 60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가는 역시 명시되지 않았으나, 권두에 순치 5년(1648) 「칠봉초도인(七峰樵道人)」의 서문이 있어 칠봉초도인의 저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소설은 엄식이 주도한 항청 봉기를 기록했는데, 앞의 20회는 《해각유편》과 대체로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으나, 21회부터 30회까지는 줄거리가 전혀 다르다. 두 작품 모두 상숙현과 복산(福山)이 함락된 전후의 비장한 상황을 묘사하면서 민족적 절개를 지킨 인물들을 찬양하고, 치욕스럽게 항복한 이들을 비판하며 강한 민족 의식을 드러냈다. 각 회의 제목은 정돈되어 있으며, 사건 서술 순서는 모두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특히 각 회의 서두에 나오는 시와 사(詞)는 유머와 풍자성이 뛰어나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한편, 이자성의 봉기를 다룬 두 소설은 대체로 폄하와 왜곡이 심하며, 이자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신세홍훈(新世弘勳)》은 《정정기문(定鼎奇聞)》, 《성세홍훈(盛世鴻勳)》, 《신사기관(新史奇觀)》, 《순치황과강전전(順治皇過江全傳)》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총 22회로 구성되었으며, 작자는 「봉호자(蓬蒿子)」라고만 되어 있고, 실제 이름은 알 수 없다. 권두에 순치 8년(1651)의 작자 서문이 실려 있다. 이 작품은 이자성 봉기의 시작부터 그가 북경을 함락하고 내부적으로 서로 살육하며, 결국 청군이 입관하고 이자성이 패하여 참살당한 뒤 순치제가 등극하여 천하가 안정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본래 《초창통속소설(剿闖通俗小說)》을 근거로 삼았지만, 새로 덧붙인 내용도 많다. 소설의 창작 목적은 서문에서 밝힌 것과 같이, “역적인 창적(闖賊, 이자성)이 난을 일으킨 시말을 기록하여 운수의 성쇠 원인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운수는 하늘의 뜻에 달린 듯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올바름을 따르고 사악함을 멀리하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소설은 이자성 봉기의 원인을 설명할 때, 재난과 전쟁이 백성에게 가져다준 깊은 고통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암(李岩)이 이자성(李自成)에게 올린 네 가지 간언, 이암과 송헌책(宋獻策), 그리고 패옥(貝玉)과 방어사(方御史) 사이에 나눈 명나라 정치 실패의 원인에 대한 논의는, 예리하면서도 분명하여 당시의 병폐를 정확히 짚고 있으며 매우 통찰력이 있다. 이는 당시 남경(南京)의 지식인들이 국사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자성을 묘사한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고, 귀신과 요괴 등 허황된 내용도 적지 않으며, 인물 묘사 또한 다소 피상적이고 거칠다. 이 밖에도 순치(順治) 연간에 명말의 정치 상황과 사회 변화를 비교적 폭넓게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초사통속연의(樵史通俗演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