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수록 권1] 1. 최수재(崔秀才)

최수재(崔秀才)

최수재 856 684

옛날 봉천(奉天)에 유공(劉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젊었을 적 그는 명문가 자제로, 성격은 호탕하고 손님 접대하기를 좋아했으며, 돈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의 집에는 항상 수레와 말이 붐볐고, 문 앞은 시장처럼 북적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 인기는 제나라 맹상군이나 조나라 평원군 못지않았다.
어느 날, 최원소(崔元素)라는 사람이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 유공은 그를 맞아 물었다.
“어느 고향이오?”
“산동(山東) 임구(臨朐) 출신의 유생입니다. 도성에서 20년 떠돌았는데, 유공께서 손님을 잘 대접한다고 하여 식객이 되고자 찾아왔습니다.”
유공은 무척 반가워하며 왕래하였고, 가끔 그에게 밥값도 보태주었다. 최원소는 열흘에 한 번꼴로 찾아와 꼭 무언가를 빌려 갔고, 집안 식구들은 모두 싫어했지만, 유공은 매번 원하는 대로 들어주었다. 이렇게 2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러다 유공은 여러 차례 재난을 겪고 재산을 다 잃게 되었다. 그 후 3년, 완전히 가난해졌고, 과거에도 계속 낙방하며 친척과 친구들도 그를 차갑게 대했다. 괜히 꼬투리 잡히기 일쑤였고, 점차 아예 왕래조차 끊겼다. 하인들도 모두 도망갔고, 일부는 괜히 죄를 만들어서라도 그 집을 떠나려 했다. 남은 건 늙은 하인 하나뿐이었다. 집에는 아내, 딸, 아들 이렇게 넷만이 남았다. 세밑이 되었지만, 솥에는 밥할 재료도 없었다.
딸은 시를 잘 지었는데, 장난삼아 이렇게 읊었다.
“몇 날 며칠 비 눈만 내리니, 누런 솜 찾기도 힘든 세상.
섣달그믐이라 해도 추운 날보다 못하니, 왜 부엌조차 연기를 못 내는고.”
유공이 이 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부엌에 남은 건 기름에 튀긴 곡식 껍질뿐이니, 그거라도 끓여 먹으면 배불리겠구나. 그런데 네 시를 보고 나니 부끄러워지는구나.”
그러고는 화답해 시를 지었다.
“올해도 작년 하늘 그대로, 부드러운 옛옷은 해지고 솜옷도 찢겼네.
동풍아, 봄 소식 전하지 마라, 부엌에선 연기 낼 힘조차 없구나.”
아내는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예전엔 벗이니 친구니 하며 찾는 이마다 도와줬죠. 그 덕에 널 뜯어먹은 자가 한둘이었겠어요? 지금은 세밑인데 먹을 것도 없고, 그래도 뭔가 생각을 하기는커녕, 딸내미랑 시나 짓고 앉았으니! 결국 굶어 죽을 작정이라, 미리 추도시를 짓는 건가요?”
유공이 말했다.
“그럼 내가 도둑질이라도 하란 말이오?”
“도둑질이라도 해야지요! 그저 도둑질할 재주가 없을까 걱정일 뿐이에요. 성문 밖 주현령(朱知縣) 말이에요, 예전에 가난했을 땐 당신과 막역했잖아요. 하루라도 안 보면 못 견디던 사이라면서요? 지금은 상을 당하고 고향에 내려왔고, 제법 여유 있다는데, 간단한 편지라도 보내서 어려움을 말하면 최소한 연료비 정도는 도와줄 거 아니에요?”
유공은 “당신 말이 없었으면 잊을 뻔했구려.” 하며 즉시 편지를 써 늙은 하인을 보냈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빈손으로 돌아온 하인은 문을 열고 욕부터 했다.
“그 죽일 인간은 다시는 만나지 마세요! 처음엔 하인이 외출 중이라더니, 나중엔 손님 접대 중이라며 기다리라더군요. 겨우 만났더니, ‘사정이 어려워 도와드릴 여유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 인사 한마디 전해주라며… 이런 자와 다시 상종한다면 주인 체면은 끝장입니다!”
유공은 온종일 기대하며 답장을 기다렸기에, 이런 결과에 크게 실망했다.
아내가 비웃으며 말했다.
“막역지우(莫逆之友)라는 게 그 모양인가요. 그렇다면 어릴 적 친구라도 기대해 보세요. 성북(城北)에 양공(楊君)이 당신과 친구였지 않아요?”
유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편지를 써 보냈다. 하지만 양공 역시 ‘장사가 안 되고 손해만 보고 있어서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유공은 허벅지를 치며 탄식했다.
“겉으로는 친구요, 입으로는 벗이라 해도, 다 소용없는 법이네.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서야, 돈을 나눌 수는 없는 일이군.”
그리하여 이번엔 마음을 다해 편지를 써서 남쪽 성안에 사는 친구 신 공자(靳公子)에게 보냈다. 그는 대대로 부유한 집안이며 유공과는 집안끼리도 가까웠고, 둘이 만나면 날 새는 줄도 모르고 의기투합하던 사이였다. 이야기 주제도 늘 ‘충의’와 ‘도(道)’에 관한 것이었다. 신 공자는 편지를 보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지기(知己)로 생각하니 돕고 싶지만,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유공은 본래 비범한 인물이니, 스스로 의지를 다잡고 살아가십시오. 빈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당신은 틀림없이 훗날 큰 부귀를 누릴 사람입니다. 이렇게 의를 중시하는 저조차도 친구의 위기에 손을 내밀 수 없으니,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편지를 읽은 유공은 화가 나 편지를 땅에 던지며 외쳤다.
“허! 평소에는 충의와 도를 입에 달고 살던 사람, 자식 생일에 백금도 아끼지 않던 사람이, 정작 친구가 급하니 동전 한 닢도 안 주는구나. 이런 게 의리 있는 친구란 말인가?”
늙은 하인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주인어른 친구란 친구들은, 도무지 사람답지 못합니다. 차라리 친척 중 부자에게라도 한 번 염치 불구하고 부탁해 보시지요.”
유공은 탄식했다.
“친구는 오륜(五倫) 중 하나다. 세 번을 부탁해도 안 도와주는데, 하찮은 친척에게 뭘 기대하겠느냐?”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밖에서 ‘똑똑’ 소리가 들리더니, 누가 찾아왔다는 말이 들렸다. ‘최 수재가 왔습니다.’
아내가 말했다.
“쳇! 우리가 이 지경인데 또 그놈이 와서 뭐 하나 더 뜯어가려나 보지? 다리라도 베어 갈 셈인가? 근데 베어갈 다리도 없구만!”
그러자 유공이 말했다.
“아니오. 저건 마치 빈 골짜기에 울리는 반가운 발소리 같소.”
그러고는 그를 맞이하게 했다.
최 수재가 말했다.
“유군, 그대가 아무리 이치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다 해도, 어쩌다 이렇게까지 가난해졌습니까? 예전의 그 화려하던 시절은 진짜였습니까, 아니면 환상이었습니까? 지금 이 쓸쓸한 현실은 환상입니까, 아니면 진짜입니까?
날쌘 다람쥐도 재주가 다하면 궁해지고, 푸르던 소나무도 색을 잃기 마련이며, 무궁화의 마음도 아침에는 있다가 저녁에는 사라지는 법입니다. 지금 그대 곁에 과거의 나처럼 지팡이를 짚고 문을 두드려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유가 말했다.
“예전에는 서로 삿갓과 수레를 함께하자고 맹세했고, 형제처럼 금란지계를 맺었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진정한 친구 몇은 얻었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쉽게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는 다시 사람들과 교류를 말할 용기조차 없습니다.”
최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염 장군이 벼슬을 잃자 친구들이 모두 떠났고, 적 정위가 복직하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런 법입니다.
그대가 세상을 몰라서 생긴 일인데, 그걸 어찌 남 탓하겠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급한 일부터 처리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대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유가 대답했다.
“두 손 놓고 죽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자는 쉴 자리를 가리지 않고, 짐 많고 가난한 이는 녹봉을 가리지 않고 벼슬한다고 했습니다. 붓을 내려놓고 군에 나아가 보는 건 어떻습니까? 잠시라도 한 끼 양식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어찌 남에게 시주를 구걸하며 얕보이는 것보다 못하겠습니까?”
유가 말했다.
“높이 솟은 것은 부러지기 쉽고, 지나치게 맑은 것은 쉽게 더럽혀지는 법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제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최가 말했다.
“밖으로는 붓으로 밥벌이를 하고, 안으로는 바느질이나 농사일이라도 하면, 추위와 굶주림은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가 말했다.
“남 밑에서 쩔쩔매며 사는 삶은 예전부터 부끄럽게 여겨왔습니다. 그런 삶은 저와 맞지 않습니다.”
최가 말했다.
“희귀한 물건은 팔아 이득을 남길 수 있고, 독점할 수 있는 시장도 있습니다. 새나 짐승의 털로도 옷을 만들 수 있고, 떨어진 곡식 한 톨 한 톨로도 끼니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장사꾼은 세 배로 받고, 청렴한 장사꾼도 다섯 배는 남깁니다. 장사라도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유가 말했다.
“조금의 이익도 탐내고, 푼돈까지 따지고 드는 삶은 본래 제가 경멸해온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하찮게 여겨왔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최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의 마음과 뜻을 살펴보건대, 다시 한번 얼굴을 들고 세상에 당당히 나서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벼슬을 해야 하고, 벼슬을 하려면 과거에 급제해야 합니다. 과거에 급제하려면 예전 공부를 다시 해야 하고, 공부를 하려면 등잔 기름과 땔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대는 그 모든 준비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제가 가진 돈 8만 전이 있으니, 수레에 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유가 말했다.
“그대 역시 지금 어려운 형편인데, 어찌 그런 부담을 짊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최가 말했다.
“남들이 버린 것은 제가 취하고, 남들이 취하려는 것은 제가 나눠줄 수 있습니다. 그게 어찌 사양할 일입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작별을 고했다.
잠시 후, 최는 실제로 수레에 8만 전을 실어 유에게 보내주었다. 유는 크게 감동해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하려 했지만, 최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곧장 떠나버렸다.
며칠 뒤, 최가 다시 자루 하나를 들고 왔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는 요즘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유가 말했다.
“설이 가까워 분주하다 보니,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최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지난번 8만 전으로는 겨우 명절을 치를 정도밖에 되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다시 자루 하나 분량의 금을 마련했으니, 그대가 중산 정도는 이루도록 도우려 합니다.”
그는 금자루를 방 안 온돌 머리맡에 급히 내려놓고는 곧장 문을 나섰다. 유가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가 떠난 뒤 자루를 열어보니, 눈부시게 빛나는 순금으로 가득했다. 방 안의 식구들이 모두 놀랐고, 무게를 재어보니 삼백 냥이나 되었다. 그 후로 최는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유는 다만 그 은혜를 깊이 새기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는 그 금을 바탕으로 집을 사고, 예전에 잃었던 재산도 되찾았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땅을 파던 중 금이 가득 담긴 옹기 두 개까지 발견하게 되어,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한때 떠났던 하인들이 차례로 다시 돌아왔고, 갖은 수단으로 다시 고용되길 청했다. 친척과 친구들도 조금씩 연락을 다시 해왔다. 1년 사이에, 예전의 번화함을 모두 되찾았다. 그러나 유는 다시는 손님 맞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문을 닫고 장막을 내려 두며 밤낮으로 글을 읽고 점을 쳤다. 그해 과거에 급제했고, 곧 중요한 관직에 올랐다. 축하 인사 오는 이들이 날로 많아졌다.
생일이 되자, 미리 사람을 보내 친척과 친구 중 가난하고 곤궁하며 난방조차 못하는 이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약속한 날,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모였고, 각자 금과 옥, 비단을 내어 방 안 가득 진열하며 유의 생일을 축하했다. 유는 잔치를 크게 열고 손님들과 술잔을 두 바퀴 돌린 뒤, 음악을 멈추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고 말했다. 그러고는 손님들로부터 받은 모든 선물을 내어 놓아, 가난하고 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각자 간직하게 했다. 사람들이 놀라 어리둥절해하며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모두가 말했다.
“이것들은 비록 변변치 못하더라도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드린 선물들입니다. 귀하지 않다 해도, 모두 친척과 친구들이 정성껏 마련한 것들인데, 어찌하여 이를 나누어주십니까?”
유는 탄식하며 말했다.
“오늘 같은 경사에 여러 어른들께서 찾아와 주시고, 제게 풍성한 선물을 주셨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이 자리에 오직 한 사람, 최수재만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입니다.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제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반드시 이해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는데, 오언고시 한 수가 적혀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시를 읽게 하며,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했다.
 
주인은 베풀기를 좋아하고,
흔들림 없이 재물을 썼다네.
손님 중 이를 만류하자,
주인은 웃으며 그러지 말라 말했네.
그대는 재물이 모일 것이라 하나,
내 생각엔 흘러야 마땅하네.
그 뜻을 길게 풀지 않겠고,
다만 대강이나마 말하리다.
사람이 재물을 귀히 여기면,
사람은 그 재물의 노예가 되네.
부자는 가진 바를 뽐내고,
가난한 자는 기를 펴지 못하네.
부유하면 사람은 더 다가오고,
궁핍하면 외면받기 십상이네.
예전 내 가난하던 시절,
넘어져도 부축하는 이 없었네.
몸 있어도 입을 옷 없고,
입 있어도 죽 한 그릇 없었네.
고귀한 친척이며 고명한 친구란 자들은,
길에서 만나면 피해 가네.
졸지에 내게 등을 돌린 채,
사내답지 않게 되었네.
오늘은 운이 바뀌어,
이름을 얻고 녹봉을 받았네.
대문엔 발걸음 끊이질 않고,
세상 이익이 날로 더해지네.
숟가락질 하나에 황금이 쌓이고,
젓가락질 하나에 돈이 넘치네.
사치는 끝이 없고,
노력조차 잊었네.
그때는 어찌 그리 인색하였으며,
지금은 어찌 이리도 풍요로운가?
찾아오는 친지와 친구들의 정,
과연 내가 바라던 것인가?
옛날엔 가난했고, 지금은 부유하니,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본디 같은 이라.
깊은 밤, 옛일을 떠올리면,
뒤척이며 마음이 편치 않네.
그 사연 분명히 있거니와,
과거와 지금은 사람의 마음이 같도다.
가난할 때 도와주는 이는 드물고,
부자 된 뒤 다가오는 이는 많도다.
성인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네.
옛날 제나라 안자(晏子)는,
겨울 난방 못하는 친척을 도왔지.
범문정(范文正)은 의전(義田)을 마련하여,
동오(東吳) 땅에 선의를 베풀었다네.
세상 모든 이들이 재물을 모으고,
기꺼이 나눈다면,
곳곳에 화교(和峤) 같은 인물이 있고,
도주(陶朱)가 넘칠지니,
재물이 흐르고 넘치는데,
어찌 이익을 다투고 흥정할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근래 부자라는 자들,
오직 이익만을 좇고,
재물 가득 넘치면 하늘조차 싫어하고,
탐욕 쫓는 그 길엔 화가 머무르네.
나는 스스로 늘 경계하며,
수전노가 되길 부끄럽게 여기네.
더군다나 지금의 재물은 진흙이나 모래같이 쉽게 얻었으니,
예전의 고생을 생각하면 한 푼조차 간절했었다네.
그대는 보이지 않는가? 어두운 골목 외진 곳, 외롭게 사는 가난한 선비들은,
지금 순간에도 쓴 약초와도 같다네.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는 모두 얼굴이 붉어졌고, 마치 등에 가시가 돋힌 듯 불편해하며, 많은 이들이 자리를 피하여 떠나갔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최 선생이 오셨습니다”라고 알리자, 유생은 신을 거꾸로 신은 채 왼쪽 문을 열고 나가 깊이 절하며 맞이했다.
최가 손을 잡으며 웃고 말했다.
“그대는 나라의 미친 개처럼 이리저리 물어뜯고 다니는구려. 어찌 두자춘(杜子春)처럼 말로만 설레발을 떠는 겁니까? 화려함과 쓸쓸함이 오고 가는 이치야 늘 있는 일이거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마귀의 장난이 뒤따르기 마련이지요. 접여(接輿)는 머리를 깎고 다니고, 뽕나무밭의 새인 상호(桑扈)는 세상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어찌 그들이 세상의 성하고 쇠하는 일에 일일이 집착했겠습니까? 세상 인심은 그러한 것인데, 고개 끄덕이는 것조차 괜한 일이지요.”
유생은 다시 두 번 절하며 말했다.
“깊은 뜻의 말씀이니, 어찌 가슴에 새기고 가죽끈처럼 지니지 않겠습니까.”
그날 밤, 손님들이 다 물러간 뒤 유생은 최를 붙들어 함께 밤을 지내자고 했다. 아내와 자식들도 나와 절하며 맞이했다.
유생이 물었다.
“요즘은 어디로 거처를 옮기셨습니까? 어찌 이리 오래 찾아오지 않으셨는지요? 덕을 갚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최가 말했다.
“예전에 내가 그대를 있는 힘껏 도왔을 때, 그대는 내게 어떤 보답을 바랐습니까?”
유생이 말했다.
“실은 그런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최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 혼자만 그런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어찌 나를 너그럽게 여기지 않으십니까?”
유생은 크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가족 가운데 누가 계십니까?”
최가 말했다.
“혼자라 하긴 어렵지요. 자녀와 손자, 증손자까지 수십 명쯤 됩니다.”
유생이 기쁜 듯 말하였다.
“제 딸이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선생 댁으로 시집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최가 말했다.
“그 일은 절대 불가합니다.”
유생이 끈질기게 물으니, 최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대는 큰사람이니 말해도 해가 되지 않겠지요. 내가 그대와 혼인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은, 스스로 사람이 아님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애산에 사는 늙은 여우일 뿐입니다.
그대가 기이한 기운을 품고 있어 내가 천 리를 마다 않고 찾아와 인연을 맺었고, 그대가 가난에 빠졌다가 다시 부유해진 것도 정해진 운명일 뿐, 내 힘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집을 지은 후에 들보를 다지고 난 다음, 내가 더 할 일이 없어진 셈이지요. 나는 다만 그 과정을 도왔을 뿐입니다.
이제 내 오랜 원이 이루어졌으니, 옛 친구를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유생은 그제야 크게 깨닫고, 저도 모르게 상쾌한 마음이 되어 말했다.
“그대가 떠나는 것은 마땅하지만, 제발 내가 ‘물을 길어낸 뒤에는 두레박을 버리는 자’처럼 되지는 않게 해주십시오.”
최가 말했다.
“나는 하늘의 공을 탐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대는 무엇을 감동할 게 있습니까?
이후 그대 앞길은 모두 순탄할 것입니다. 벼슬은 정삼품(正三品)까지만 오르겠지만, 재물은 십만 냥에 이를 것입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한마디 말로 작별 인사를 남기려 하니, 잘 새겨 들으시오. 사람의 마음은 서로 같지 않아 얼굴처럼 각기 다릅니다. 상수리나무와 참나무는 칠 년이 지나야 진짜 나무로서 쓸모를 알 수 있듯, 사람을 알아보는 일도 쉬운 게 아닙니다. 무른 흙으로 단단함을 이루고, 모난 것을 깎아 벽돌처럼 맞추어야 진정한 벗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을 마음에 두시고, 꿩이나 개 같은 자들에게 비웃음 당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는 작별을 고하며 떠났고,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생은 훗날 도찰방(臬司, 감찰 업무를 맡는 지방 고관)까지 올라 벼슬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최의 정을 잊지 못해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향과 종이를 올려 제사를 지내며, 평생 그 은혜를 기렸다.
 
한재(閑齋)가 말한다.
“세상의 풍속은 자질구레하고 변덕스러워서, 우정이란 것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잘나갈 때는 얼굴만 익어도 친구라고 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온다. 그러나 몰락하고 나면, 겉으로는 함께 있어도 속으로는 멀어져서, 백 명 중 하나도 응하려 하지 않는다. 이때에는 부조화한 사람들끼리 억지로 어울리는 것 말고는, 참된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속에는 스스로 분별할 기준이 있었고, 마음속에는 이미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들든, 혼자 외롭게 떠나든, 우정은 처음과 끝이 같아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모든 사람을 같은 사람에서 다른 존재로 바꾸고, 단정했던 무리를 흐트러뜨리게 되는 셈이니, 그런 도리가 있을 리 없다.”
 
난암(蘭巖)이 말한다.
“사람들은 부귀하면 앞다투어 달려들고, 가난하면 피해 버린다. 이런 속된 인심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떳떳하게 홀로 행동한 이가 없고, 겨우 한 마리 여우만이 그렇게 했을 뿐이다. 사람이 여우만도 못하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문

 崔秀才

  奉天先達劉公,未遇時,故世家子。少倜儻好客,揮霍不吝,車馬輻輳,門庭如市,行路者健羡。雖齊之孟嘗,趙之平原不是過也。忽有崔元素者,投一刺,劉接見,詢其邦族,曰:『山東臨朐秀才也,游都門二十年矣。聞公喜接納,來作食客耳。』劉大悦,與之往來,亦時濟其薪水。崔率十余日一至,至必有所借貸,家人悉厭賤之,劉獨不以爲瑣,每如其愿,未嘗拂逆。如是者二年餘。
  劉迭遭大故,資產蕩盡。又三年,一貧如洗。更屢試不第,親故白眼相向,動輒得咎,傳爲口實,漸至不相聞問。婢仆逃散,并有心作罪以求去者接踵,仅存一老仆。内則一妻一女一子,鼎足而三焉。会腊盡,牛衣尘甑,無以卒歲。女能詩,戲吟曰:『闷殺連朝雨雪天,教人何處覓黄棉。歲除不比逢寒時,底事厨中也禁烟。』劉見之,笑曰:『此際玉摟起粟,若可煮食,足够一飽。今得汝詩,能不令人羞也?』因和之曰:『今年猶戴昔年天,昔日輕裘今破棉。寄語東風休報信,春來無力出厨烟。』
  妻怒之以目,曰:『往日良朋密友,有求必應,啜汁者豈止一人。今年近歲逼,吃着俱無,猶不少思籌策,乃和儿女子作推敲醜態,想亦拼得餓死,故预作韭露挽歌耶?』劉曰:『然則欲我做賊去耶?』妻曰:『做賊亦得!第恐君無其才耳!順城門外朱知縣,方其落拓時,與汝爲莫逆交,一日不見,亦不能耐。今聞其丁艰在家,宦囊頗厚,詎不能走一簡,聊濟燃眉耶?』劉曰:『微汝言,吾几忘之矣。』亟作書,遣老仆往投之。日暮赤手回,入門即骂曰:『喪心人不必復與相識矣!始而阍人辭以他出,我則不信;既而送客在門,相見。兩眼棱棱,持書而入。再四促之,始傳語言事忙,不暇修復。但借口致意,主人現在凡百需費,囊無一文,正愁無處措置,斷难如命云云。似此喪心人,若復與相識,名節掃地盡矣!』劉企刻一日,滿拟必获如意,骤聞此變,不禁索然。
  妻哂曰:『莫逆交不足恃矣。然總角之交,應非泛泛也。城北楊君,非與君爲總角交乎?』劉以爲然,復走柬以干之。楊辭以生意淡泊,本利損亏,無囊可解。劉撫髀歎曰:『面朋口友,固不足怪。欲明通財之義,非道義之交不可。』乃挑燈作札,罄吐肝膈,翌日付老仆持送南城靳公子。靳世胄閥閱,田园遍畿辅。公子與劉爲世交,又屬至戚,每當晤對,夜以繼日,所讲論非忠義大節,即出世大道,互相诱掖,不啻同胞,所謂立脚不随流俗,留心學做古人者。閱札即刻復答,謂:『叨在知己,亟當如命,奈心與力違,束手無策。君但勉爲尚志之士,無自暴棄,又何忧貧賤哉!且天生劉君,必非碌碌者,君姑待之,保有大富貴日也。第好義如弟者,值此危急之秋,竟坐視良朋之困,不能一援手救,殊堪自愧,唯知己者谅之耳!』劉忿,掷書于地曰:『嗬嗬!平日披肝胆,談道德,何啻羊、左、任、黎!每舉一子一女,猶以百金爲壽。今急切相需,乃不破一文,反以肤詞迂說相敦勉。所謂道義之交,固如是乎?』
  老仆慰之曰:『主之朋友,大概未曾交得一人。親戚中不乏富貴者,盍拚一失色,與之通融。』劉歎曰:『朋友列五倫之一,尚三呼不應,瑣瑣姻娅,又何望乎?』言次,聞門有剥啄聲,報崔秀才來矣。妻曰:『呸!人家潦倒至此,彼尚欲來刲瘦胫耶?焉知并胫也無,即欲來刲,正恐無下刀處!』劉曰:『不然。此空谷足音也。』延之入。
  崔曰:『劉君縱理不入于口,而乃一寒如此哉?昔日之繁華,真耶幻耶?今日之索寞,幻耶真耶?鼯技易窮,青松落色,槿心朝在,夕不存矣。尚有一人肯杖策踵門如崔元素者否?』劉曰:『昔日自謂盟車笠,订金蘭,得一二耐久朋,爲終身胶漆,不意翻覆若此,不敢復言交游矣。』崔曰:『不然。廉將军免官客去,翟廷尉復职客來。人情自昔然也。君自不達,夫何怨尤!智者當务之爲急。爲今之计,當奈何?』劉曰:『束手待毙耳!』崔笑曰:『出此言,當罚锾矣。吾聞负重涉遠,不择地而休;累重家貧,不择祿而仕。盍投笔从戎,聊博升斗,不猶愈于托钵向人,受守錢虏之輕薄乎?』劉曰:『峣峣者易缺,皎皎者易污,非所以自完也。』崔曰:『外以笔耕,内以针耨,亦可免冻馁。』劉曰:『局促效辕下驹,夙所羞也。』崔曰:『奇貨可居,垄斷可登,鸟兽之羽毛可织而衣。其遺粒足食也。貪賈三之,廉賈五之,盍爲賈?』劉曰:『觊觎分毫,镏銖必较,素所鄙夷,而弗屑者也。』崔曰:『然則度君之心,量君之志,欲更揚眉吐氣,非官不能矣。欲爲官,須登第;欲登第,須理舊業讀書;欲讀書,須膏火之費。吾視君皆未易办也。吾有錢八十千,可辇至。』劉曰:『君方同病,詎忍波累?』崔曰:『人棄我取,人取我予,夫何辭焉?』遂言别。移時,以車辇八十千至,劉大感謝,欲备一餐相款。崔不坐而去。
  迟數日,復提一囊至,曰:『君曾肄業否?』劉曰:『新正伊迩,未免匆忙。』崔曰:『予思八十千,豈敷樽節之用,更蓄得一囊金,爲君謀小康。』亟置之炕头,便出門,挽之不及。試启囊,灿然盡赤金也。一室俱驚,權之三百兩。崔从此不復至,更不識其居處,徒铭感而已。出資购第宅,贖舊產,又于新居掘得窖金二瓮,遂成富室。僮仆去者,次第復來,百计夤緣,以求收录。親友亦稍稍通庆吊。一年之間,繁華如故。劉不復好客,唯闭户下帷,日夜占毕。是年及第,官清要,賀客日盛。
  值初度,预使人四出,凡親故中貧窭落魄及不能舉火者,盡招致之。及期,親友毕集,竞出金玉錦繡,罗列滿堂,爲劉祝嘏。劉乃張筵高会,酒再巡,罷乐,出席,舉觞屬客,悉出所得,分赠諸貧賤之前,使各收贮。眾愕然,不测何故。佥曰:『凡兹不腆,其所以奉祝长年者,縱不足貴,亦諸親友之芹献也。曷爲散之?』劉歎曰:『今日何幸,群公臻至,赐我百朋,所恨座中唯少崔秀才一人耳!崔若在,必能知我之爲此舉也!』因袖出一笺,則五言古詩一章也。命其子朗诵以示眾,曰:

  主人好施與,揮霍無躊躇。  客有諫之者,主人笑曰毋。  君謂財可聚,我意財宜疏。  不暇为君详,聊以言其粗。  財为人所寶,人为財之奴。  富者以其有,貧者以其無。  有則氣逾揚,無則氣不舒。  逾揚人愈親,不舒人不知。  昔我貧賤時,颠踣無人扶。  有身不能衣,有口不能糊。  貴戚與高朋,相逢皆避途。  居然一厭物,俨若非丈夫。  今日奋功名,食祿復衣襦。  门庭聞如市,势利日以殊。  一壽千黄金,一箸萬青蚨。  奢窮欲亦極,無劳用力图。  當時何其啬,今日何其都?  顧兹親串惠,豈我所愿乎!  昔貧今且富,昔我即今吾。  清夜维其故,反侧心踟蹰。  其故良有以,今昔人情符。  周急不繼富,聖言不可诬。  忆昔齐晏子,舉火蟾葭莩。  又聞范文正,義田置東吴。  設使天下人,能聚復能输。  在在無和峤,處處有陶朱。  流过阿堵物,何來庚癸呼。  堪歎近富者,唯利之是趨。  滿盈神鬼惡,往往寄祸沽。  用是常自惕,羞为守虏徒。  况今得之如泥沙,當日求之無錙銖。  君不见栖栖窮巷孤寒儒,此時此際如苦荼!

  眾聞之無不赧然,如芒在背,多有逃席而去者,亦不追挽。俄報崔先生至矣,劉倒屣左辟鞠之。崔握手而笑曰:『君可謂國狗之瘈,無所不噬矣!奈何效杜子春口舌爲?且繁華索莫,其衍几何?苟不齊之,魔障釶起矣。彼接舆髡首,桑扈裸行,倏來忽逝,豈屑屑于菀枯隆殺哉?会盡人情,点头亦屬多事耳!』劉再拜曰:『至味之言,敢不佩爲弦韦?』
  是夕客散,獨留崔宿,妻子亦出拜之。劉曰:『近日徙居何所?胡久不一至?致缺酬報。』崔曰:『昔者悉索君,君時亦望報否?』劉曰:『實無是心。』崔曰:『然則予獨有是心哉?何不恕也!』劉大笑,因問家中更有何人。崔曰:『頗不孤孑,子女孫曾數十矣。』劉欣然曰:『小女未字,以歸君家,何如?』崔曰:『此大不可也。』劉力詰問之,崔吱唔良久,始吐實曰:『君长者,言亦無害。所不敢與君結姻者,自愧非人,實艾山一老狐也。以君抱奇氣,故不遠千里來相結納,致君貧而再富,亦定數,非吾之力。譬如作室,既镇其甍,又何如焉?吾特因人成事耳。今夙愿已了,即當长辭故人矣。』劉始大悟,不覺洒然曰:『君去固自得矣,將無使吾爲忘筌忘蹄之人哉!』崔曰:『予非貪天功者,君何感焉?从此前程皆順境矣。官不過三品,而富則十萬,雖然,詎無一言爲留别之赠?吾聞人心不同,有如其面,橡樟二木,七年乃知。知人之鉴,不易明也。甘以坏何如淡以成,毁方而瓦合,全交之至言,君其志之,勿爲雉犬所笑。』言讫,辭出,永不復至。劉後官至臬司,以老告歸。感崔之谊,朔望祀以香楮,終身不衰。
  閑齋曰:戋戋之俗,萬變千更,交固不易言也。方其盛也,面朋口友,不招自來;及其衰也,迹合神違,百無一應。除毁方瓦合一道,誠無良法矣。胸中自有泾謂,皮里自具春秋。故穰穰而來,茕茕獨往,交可以始終一也。不然,直欲盡化同人爲異物,易濟濟爲绥绥,有此理哉!
  蘭巖曰:富貴則趨附之,貧賤則違避之,俗情概然,然曾無一人矫然獨出,而仅让此狐。人而不如狐也,良可愧也。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