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의(洪由義)
홍유의(洪由義)라는 사람은 정원(靖遠) 협신(協汛)의 한 하급 군인이었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여 살아있는 걸 방생하는 걸 좋아했다. 한가한 때면 황하(黃河) 강가에 앉아 어부가 그물을 걷는 것을 보았는데, 그물에서 버려지는 작은 물고기나 새우, 그리고 소라나 방합(蚌蛤) 같은 것들을 모두 주워 물속에 던져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해 동안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강을 건너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물결을 따라 십여 리를 떠내려갔다.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누군가가 팔을 잡아끌어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큰 문 아래에 있었다. 사방에 황토색 물이 벽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문 앞에는 두 개의 큰 돌 거북 모양 조각상이 있었고, 그 넓이는 대략 몇 무(畝) 정도 되어 보였다. 홍유의가 크게 놀라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자주색 옷에 검은 사모를 쓴 두 사람이 나와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예의에 어긋날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홍유의는 그들을 따라 넓은 전각으로 들어갔다. 전각 위에는 귀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나이는 마흔쯤 되어 보였다. 옷과 관이 매우 기이하고 예스러웠으며, 좌우에는 많은 시종들이 시립해 있었다. 홍유의는 섬돌 아래 엎드려 절했다. 귀인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 부하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으니, 당신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마땅히 조금이나마 넉넉히 보답해야겠소.”
그러고는 하인에게 명하여 완두콩만 한 크기의 구슬 하나를 가져오게 하여 홍유의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여의주(如意珠)라 합니다. 이것을 쥐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삼 년 뒤에 다시 돌려주셔야 합니다.”
홍유의는 공손히 절하고 구슬을 받았다. 귀인은 다시 자주색 옷을 입은 관리 둘을 시켜 그를 내보냈다. 두 관리는 홍유의에게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파도가 거세게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잠잠해졌다. 홍유의가 천천히 눈을 떠보니 이미 땅을 밟고 서 있었고, 두 관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구슬은 여전히 손에 있었다. 그는 구슬을 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가족들은 이미 상복을 입고 있다가 서로 보고 놀라며 의아해했다. 홍유의는 마른나무를 붙잡고 있었기에 죽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가족들은 기뻐하며 그의 말을 믿고 상복을 벗었다.
홍유의(洪由義)는 본래 저포(樗蒱, 주사위 놀이) 놀이를 매우 좋아했다. 구슬을 얻은 후 다시 무리들과 노름을 했다. 끗수가 분명히 ‘올빼미 눈(梟色)’이었는데, 소리치자 모두 ‘꿩의 눈(廬雉)’으로 변했다. 그 뒤로는 도박만 하면 반드시 이겼고, 가세도 점점 넉넉해졌다. 그는 마침 관직을 받아 서안(西安)으로 가게 되었다. 서안은 성(省)의 중심지이자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옛 수도였으며, 풍속이 화려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사치스러웠다. 왕족 자제들은 살찐 말과 가벼운 갖옷을 입고, 한 끼 식사에 만 냥을 쓰고 한 번 노름에 백만 냥을 던졌다. 홍유의는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팔을 휘저으며 나아갔는데, 정오부터 저녁때까지 허리에 찬 돈이 백 일(鎰)이나 되었다.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노름판의 사람들은 속으로만 부러워했다. 홍유의는 가득 재물을 싣고 돌아와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장남을 위해 벼슬을 샀고, 둘째 아들은 감생(監生)이 되게 했다. 그제야 그는 구슬을 얻은 일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말했다. 이후로 더욱더 방생을 힘썼으므로, 황하(黃河) 강가의 사람들은 그를 홍선인(洪善人)이라고 불렀다. 오원(五原)에서 부자로 손꼽히는 사람들은 홍유의를 최고 부자로 추켜올렸다. 삼 년 후 가을밤에 막 잠이 들었는데, 꿈에 전에 보았던 자주색 옷을 입은 관리 둘이 나타나 말했다.
“약속한 기한이 되었으니, 구슬을 돌려받아야겠습니다.”
홍유의는 꿇어앉아 구슬을 바쳤고, 잠에서 깨어나 보니 구슬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후 홍유의는 수명이 다하여 아흔아홉 살까지 살다가 병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정원(靖遠)에 있을 때, 홍유의의 손자는 이미 쉰이 넘었고, 여전히 부유한 노인이었다.
난암(蘭岩)이 말한다.
무릇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에는,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반드시 공명이나 부귀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뜻대로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홍유의(洪由義)는 구슬을 얻은 후에 오로지 저포(樗蒱) 놀이에만 매달려 삼 년의 소원을 마쳤으니, 그 포부는 작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만약 큰 부자가 된다면, 얻고자 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게 없다. 홍유의는 요령을 확실히 잡고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
원문
洪由義者,靖遠協汛一洚子也。性慈善,喜放生。暇時坐黃河畔,見漁人起網,凡所棄小魚細蝦暨螺蚌之屬,悉拾之投於水中。積數年不倦。一日渡河,失足落水,隨波逐浪者十餘里,昏迷間,覺有人捉其臂,拖至一處。視之,則身在一大門下,四面黃水如壁立,門前二石贔屭,大約數畝。洪大駭異,方懷惑間,門忽啟,見紫衣紗帽者二人,出謂洪曰:「可亟入,勿懼失儀也。」洪從之,至一廣殿。殿上有貴人,年可四十許,衣冠奇古,左右侍從甚都。洪蒲伏階下,貴人勞之曰:「汝大有恩於我部下,不但脫汝難,且當少為潤澤。」因命取一珠,大如豌豆,賜之曰:「此如意珠也。握之凡有所需,無不如意。三年後可見還也。」洪唯唯拜賜,貴人仍命二紫衣吏送出。二吏囑閉目。但聞波濤洶湧之聲,頃刻而息,徐開其目,則已腳踏實地,而二吏失所在矣。珠猶在手,遂秘之以歸。歸則家人已成服,相見各驚疑。洪紿以得抱枯木,故不致死。家人喜而信之,乃釋服。
洪素喜樗蒱,得珠後,重與其徒博。分明梟色,呼之,皆成廬雉,於是有博必勝。家業漸豐。適奉官之西安。西安為省會之處,漢唐故都,俗尚豪華,人情奢侈。王孫公子,肥馬輕裘,一食萬錢,一擲百萬。洪側身而入,掉臂而前,自午至晡,腰金百鎰。旁觀者但撟其舌,當局者徒熱於心。滿載而歸,遂成巨富。為長子捐官,次子納監。始以得珠之事,告其妻孥。愈以放生為務,由此河上人,稱為洪善人。五原稱富室者,推洪為巨擘。三年後,秋夜方寢,夢見前二紫衣吏至,曰:「瓜期屆矣,珠當見還也。」洪跪而奉之,既寤而珠已失矣。後洪壽至期頤,無疾而歿。予在靖遠時,洪之孫已五十餘,猶為富家翁也。
蘭岩曰:凡人意之所在,無不如願以償,不必功名富貴也。斯如意之最為難耳,乃得珠後,徒事樗蒱,以畢三年之願,志亦小矣。雖然,人苟巨富,凡所欲得欲為者,無不能。洪可謂握要以圖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