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박(阿襮)
모 종백(宗伯)은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거처하면서, 수천 냥을 들여 큰 집 한 채를 샀다. 그 집 뒤편에는 아홉 칸짜리 누각이 있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고 온갖 잡동사니만 쌓아 두었고, 항상 자물쇠로 잠가 두었다. 그런데도 가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종백에게는 아들 넷과 딸 셋이 있었는데, 딸들은 모두 부유한 집에 시집갔고, 아들 셋도 명문가와 혼인하였다. 다만 넷째 아들만 열여섯으로 아직 장가들지 않았다. 그의 방에는 해당(海棠)이라는 시녀가 있었는데, 머리를 올릴 나이쯤 되었고, 영리하고 곱상하였다.
어느 날 마침 종백이 산으로 나들이 나가 돌아오지 않고 해당은 밤늦도록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누각 위층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비단 병풍과 수놓은 장막이 걸려 있고, 촛불은 밝게 타올랐다. 화려하게 차려진 잔칫상에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남녀가 섞여 열 명이 넘었다. 신발이 엉켜 있을 만큼 붐볐다. 술과 고기가 끊임없이 오갔다.
사람들이 해당에게 옷을 입고 자리에서 술시중을 들라고 시켰지만, 해당은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자리에 있던 어린 여자 하나는 용모가 요염하고 머리는 구름처럼 풍성했으며, 넓은 소매의 웃옷을 입었다. 그녀가 문양이 새겨진 코뿔소 잔을 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 네 집 넷째 도령 방에서 시중드는 계집아이 아니니? 나와 네 도령은 전생 인연이 있어. 곧 함께 가마를 타고 너희 집에 들어갈 몸이니, 이제부터는 한 식구야. 괜히 부끄러워하지 마.”
해당은 기둥에 기대어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곱게 단장한 또 다른 어린 여자가 버럭 욕을 퍼부었다.
“이 쓸모없는 계집! 입을 다물고 뾰로통한 얼굴로, 도대체 누구한테 네 화장한 눈썹과 속눈썹을 자랑하려는 거야? 너 같은 계집은 그저 손 씻기나 도와주고 머리 빗겨주고, 쓰레받기나 들고 빗자루질이나 할 사람이야. 무슨 춤이니 노래니 하는 걸 알긴 하겠니? 설령 춤을 춘다 해도 소 울음이나 나고, 노래를 불러도 당나귀처럼 깡충대겠지! 삼저(三姐)는 왜 저런 아이랑 말 섞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어린 남자가 말하며 냉소했다.
“내가 아까부터 저 애를 데려오지 말라 했잖아. 삼매(三妹)가 굳이 데려오자더니 어쩌자는 거야? 내 새 비단 버선 하나가 망가졌고, 무늬도 열 곳이나 더럽혀졌다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잔칫집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러자 처음에 해당에게 말을 건 여자아이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소년에게 말했다.
“사형(四兄)은 어쩌면 그리 속이 좁으세요? 구매(九妹) 흉내까지 내서 저를 놀리다니요. 해당은 비록 신분이 낮아도 얼굴과 자태는 사형 댁 사수(四嫂)보다는 훨씬 낫지요. 지금처럼 여러 사람 앞에서 광대처럼 춤추고 웃지 않겠다는 건 오히려 그녀가 자신을 지킬 줄 안다는 뜻이에요. 굳이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그 버선 하나 값이 얼마나 한다고요? 그깟 걸로 입에 올릴 일은 아니죠. 제가 억지로 해당을 깨워 데려왔으니, 더러워진 게 있다면 제가 대신 물어드릴게요. 여덟 냥이면 되겠습니까?”
소년은 말문이 막혀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했다.
“삼매는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서 성격이 참 그대로네. 그저 장난삼아 한 말인데, 이렇게까지 꾸짖을 줄이야.”
그는 사람을 시켜 해당을 아래로 돌려보내 원래 있던 방으로 데려다 놓았다. 해당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심장이 벌렁거려 견딜 수가 없어 같은 방에 자고 있던 다른 시녀 둘을 흔들어 깨워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시녀들도 두려워했다. 다음 날 해당은 넷째 도령에게 이를 고했고, 넷째 도령은 다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했다. 부인은 놀라며 말했다.
“이건 분명 여우 귀신 짓이다. 다시는 뒷마당에 가지 말거라.”
그러나 넷째 도령은 몰래 해당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고, 마음속으로는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흠모하게 되었다. 게다가 ‘전생의 인연’이라는 말도 들었기에, 그는 자주 뒷마당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뜰을 서성이다가, 무언가 눈앞에 툭 떨어졌다. 주워 보니 금으로 된 팔찌였다. 그는 그것을 품고 방으로 돌아와 해당에게 보여주었다. 해당은 말했다.
“이건 여우의 물건이에요. 가져서는 안 돼요.”
넷째 도령이 말을 듣지 않자, 해당은 혹시 자기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 이 사실을 부인에게 고했다. 부인은 원래 성격이 엄하고 엄격했기에 크게 노하며 말했다.
“못난 자식! 옛말에 어른 말 안 들으면 눈앞에 참화가 닥칠 거라 하지 않았느냐?”
부인은 넷째 도령을 불러 팔찌를 내놓게 하고 살펴보니, 그저 버드나무 모양의 고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꾸짖고 매질하라고 명했다. 형과 형수까지 모두 모여들어 무릎 꿇고 용서를 구했다. 한창 소란스러운 가운데, 북쪽 창 아래서 여자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 아이는 너희 집 당당한 자제인데, 어찌 이토록 모욕을 주느냐? 그게 자식을 사랑하는 어미의 태도란 말이냐?”
부인은 그것이 여우의 목소리임을 알고 노하여 말했다.
“남의 집에서 자식을 훈계하는데, 너 같은 여우가 끼어들 일이냐?”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흥! 사실 내 일이 아니긴 하네! 그래도 네 아들이 아직 어리고 어려서, 차마 매질 당하는 건 못 보겠기에 한마디 한 것뿐이야. 안 그러면 죽여버려도 상관없단 말이지!”
맏아들이 격분하여 당장 죽이겠다고 말하며 칼을 찾으려 하자, 둘째와 셋째가 막아서며 말렸다. 그러자 여우가 크게 화를 내며 날뛰었다. 집안엔 말소리가 뒤엉키고 기왓장이 날아들어 방 안 기물들이 모두 부서졌다. 부인은 두려워 아무 말도 못 하고 숨을 죽였다. 여우 떼는 한참이 지나서야 물러갔다.
그때부터 집안은 밤낮으로 뒤틀린 기운이 감돌고, 온갖 괴이한 일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둘째 아들이 말을 타고 관아로 가는 길에, 타고 있던 말의 등자가 종종 갑자기 사라졌다. 해당이 화장실에 가면, 자줏빛 옷을 입은 소년이 나타나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맞추려 하곤 했다. 해당이 오랫동안 이를 힘껏 물리치면 그 소년은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시녀들은 그것보다 더 심한 일을 당했는데, 강제로 희롱당하기도 했다.
맏아들이 새로 중서사인(中書舍人) 벼슬을 받아 동료들이 돈을 모아 축하연을 열기로 했다. 잔칫날이 되자 대문 앞은 시장처럼 붐볐다. 부엌에서는 요리사들이 북적였다. 손님이 도착하자 각종 고기와 생선 등 진귀한 음식들이 상에 오르고, 술과 안주가 풍성히 준비되었다. 그런데 잔을 들어 술을 마시려 하자, 잔 안의 술이 모두 말 오줌으로 변해 있었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으려 하자 그것이 온통 똥과 구더기로 바뀌어 있었다. 큰 소란을 일어났다. 손님들은 일부러 모욕을 준 거라 여겼다.
맏아들은 그것이 여우의 장난임을 깨닫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인사만 하고 연이어 자리를 떴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맏아들은 격분하여 누각 아래에 서서 한참 동안 소리 높여 욕을 퍼부었다. 둘째가 와서 달래고 겨우 그를 데려갔다. 배가 몹시 고파진 그가 아내가 말하니, 아내는 “부엌에 음식이 아주 많으니, 뭘 좀 가져와 드세요”라고 답했다. 그는 시녀에게 간식을 가져오게 했다.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한 입 삼키는데 목을 넘어가는 순간 뱃속에서 뭔가 꿈틀꿈틀 움직이고 꿀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곧바로 토해낸 다음 그 속을 들여다보니 온통 피부병이 난 작은 개구리들이었다.
그는 한바탕 구토하고는 다시는 집 안에서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날이 저물자, 그는 밖에서 밥을 사 먹고 돌아왔다. 이후 친척들 역시 서로 경계하여 이 집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맏아들에게는 처남이 하나 있었는데, 금군(禁軍) 소속 시위(侍衛)로, 혈기 넘치고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젊은이였다. 그가 누이의 안부를 살피러 집에 왔다가 여우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그가 비웃으며 말했다.
“맹금이 백 마리 있어도 물수리 하나만 못하지. 형님 집엔 간 큰 자가 없어서 요괴 하나 제압 못 하는 겁니까? 제가 오늘 밤 이 집에 묵으면서 반드시 이 귀신들을 물리치겠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놈들의 호적수가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맏아들이 말했다.
“네 꼴을 보면 여자 같아서, 여우가 널 보고 엉뚱한 짓이라도 할까 두려운데, 무슨 제압을 한다는 거냐?”
시위는 분개하며 외쳤다.
“두고 보시지요! 오늘 밤 바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때마침 부인이 친정으로 나가 있었기에, 맏아들은 시위를 머물게 하였다. 시위는 해 질 무렵, 기쁜 기색으로 이불 보따리를 들고 누각 아래로 들어가 홀로 묵기로 하였다. 그의 누이와 둘째, 셋째가 여러 차례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밤이 되었을 때는 처음엔 아무 기척도 없었고, 오히려 더 여유롭고 태평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 몸이 피곤해지자 그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사경(四更)이 되었을 무렵, 맏아들이 잠에서 깨어나 이불을 두르고 앉아 불을 붙여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침대 밑에서 누군가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상히 여겨 아내를 깨워 함께 촛불을 들고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알몸으로 침대 밑에 누워 있었다. 둘은 화들짝 놀라 도둑이 들었다고 외쳤고, 하인들과 노파들이 모두 달려왔다. 붙잡고 보니, 놀랍게도 그 사람은 바로 시위였다. 모두가 깜짝 놀랐고, 시위 자신도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맏아들은 옷을 입혀주고 이유를 물었지만, 시위는 어떻게 거기 있게 된 건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그는 급히 말을 몰아 돌아갔고, 그의 옷과 신발, 버선은 모두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는데, 더럽혀져 다시는 입을 수 없었다.
그 무렵 셋째 딸은 대낮에 낮잠을 자다 옷에 불이 붙었다. 깜짝 놀라 옷을 벗어 던졌지만, 불길은 더 세게 번졌다. 그러나 옷은 원래대로 멀쩡했다. 그녀는 분에 겨워 욕설을 퍼부었다. 이후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안방에서는 더러운 물건들이 대문 앞에 매달려 있고, 심지어 여성의 속옷이 길 한복판에 던져져 있었다. 새 옷은 아직 만들어지기도 전에 찢겨 있었고, 새 거울은 막 닦자마자 금세 흐려졌다. 그렇게 수십 일이 흐른 뒤, 종백이 여행에서 돌아왔다. 부인은 그간 집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하며, 이사 가자고 권했다. 그러나 종백은 말했다.
“여인네들은 미신을 잘 믿고 쓸데없이 겁이 많소. 괜히 법석 떨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잠잠해질 거요.”
반달쯤 지나자, 과연 집안은 안정을 되찾았고, 모두가 이를 주인의 덕으로 여겼다. 종백도 내심 뿌듯해하며 말했다.
“어떻소? 괴이한 일을 이상히 여기지 않으면, 괴이한 일은 저절로 사라지기 마련이지요.”
며칠 뒤, 문지기가 급히 뛰어 들어와 말했다.
“방 대감께서 막 문 앞에 도착하셨습니다!”
방공(方公)은 종백보다 한 세대 윗사람으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인물이었고, 종백이 향시에 급제할 때 시험관이기도 했던 존귀한 사람이었다. 그런 분이 직접 이 집을 찾았다는 소식에 온 집안이 크게 기뻐했고, 종백은 급히 예복을 갖춰 입고 대문 밖까지 마중 나갔다.
그는 예를 다해 방공을 맞이했고, 방공도 웃으며 응했다. 대청에 올라 예를 마치자, 방공에게 자리를 권해 앉게 했다. 그러나 방공은 오랜 시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말은 점차 길고 번잡해졌다. 그는 또 종백이 평소 인사를 자주 하지 않는 것을 서운하게 여긴다며 꼬집었다. 종백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사죄했지만, 방공은 저녁 식사가 나올 때까지, 심지어 한밤중이 될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종백은 온몸에 기운이 빠져 정신이 몽롱했고, 웃는 얼굴로 간신히 대화를 이어갔다.
한참이 지나자, 방공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반응도 없어졌다. 종백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큰아들에게 몰래 곁에서 살펴보게 했다. 큰아들이 몰래 살펴보고 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버님, 얼굴에 솜털이 잔뜩 나 있고, 뭐가 뭔지 분간이 안 됩니다.”
종백은 크게 의심스러워져 직접 나아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오른편 자리에 앉아 있던 ‘방공’이 단지 허수아비처럼 생긴 지푸라기 인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자(父子)는 기겁했고, 이내 여우의 장난임을 알아차렸다. 종백은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속았군! 완전히 속았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박장대소했다.
날이 조금 밝아올 무렵, 종백은 지팡이를 짚고 뒷누각 아래로 나가 이렇게 말했다.
“주인장을 대신하여 아자(阿紫)에게 전하오. 들으니 사당 속 쥐는 물에 잠기지 않고, 지붕 쥐는 연기에 질식하지 않는다 하오. 그것은 그들이 머무는 곳에서 터를 잘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물며 여우란 짐승이 세월이 오래되면 신선이 될 수도 있다는데, 짐승 가운데 영물이 될 수 있다면 굳이 사람에게 해를 끼쳐야 하겠소? 혹 이 모든 게 화려한 요술을 자랑하고자 함이라면, 요술이란 것이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일이겠소? 만약 어리석은 자들을 놀라게 하여 이익을 얻고자 함이라면, 그런 어리석은 이들을 놀라게 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소? 모두 하책(下策)일 뿐이지, 결코 상책이라 할 수 없소. 그러니 지금 내가 제안하오. 회벽을 발라 벽을 세워 경계를 짓고, 누각 아홉 칸은 당신들이 마음껏 쓰되, 벽 남쪽은 우리가 사는 구역으로 삼아 서로 침범하지 않도록 하시지요. 말로 화해하고 끝맺도록 합시다. 만일 다시 침범해 온다면, 우리도 힘껏 싸울 것이오!”
그러나 누각 위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곧장 인부를 불러 회벽을 발라 담을 만들었고, 담은 동서로 길게 열 장이 넘게 뻗어 있었다.
그날 밤, 종백이 홀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수염 희끗한 노인과 노파가 나타났고, 남녀 다섯 일곱 명을 이끌고 함께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공은 참으로 너그러우시고 도량이 넓은 분이십니다. 지난날의 말씀,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다만 댁의 넷째 아드님께 큰 재앙이 닥칠 예정입니다. 저희 셋째 딸인 아박(阿襮)을 첩으로 들여보내어 아드님을 시중들고 보호케 하여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오. 부디 마다하지 말아 주십시오.”
종백이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소?”라고 묻자, 노인이 손으로 가리켰다. 종백이 자세히 보니, 키도 적당하고 풍채도 좋았으며, 미모는 세상에 둘도 없이 뛰어났다. 살아오며 그런 여인을 본 적이 없던 그는 기뻐하며 허락하였다. 언제 혼인하느냐고 묻자, 노인과 노파가 말했다.
“우리네 풍속은 직접 맞이하러 가지 않습니다. 이미 허락하셨으니, 그 아이가 즉시 시부모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예식 운운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 말을 남기고 그들은 떠났고, 다시는 집안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
사흘 뒤, 종백과 부인이 마침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한 여인이 갑자기 발을 걷어 올리고 들어왔다. 곱게 화장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채 절하며 “아박이라고 합니다”라고 스스로 밝히고, “부모님의 명을 받고 넷째 도령을 시중들기 위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인은 그 여인이 지혜롭고 아름답다며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그 여인은 시부모를 정성껏 모셨고, 시집 식구들과도 두루 화목했다. 넷째 도령과도 각별히 정을 나눴다. 일도 부지런히 잘했고, 바느질 솜씨도 뛰어나 해당(海棠)과도 특히 사이가 좋았다.
여름 어느 날, 천둥과 폭우가 몰아쳤다. 여인은 놀라 허둥지둥 넷째 도령과 함께 장막 안으로 들어가 끌어안았다. 그 순간 여인은 검은 암컷 여우의 모습으로 변했다. 넷째 도령은 어찌할 줄 몰라 불안에 떨었고, 벼락이 집 주위를 맴돌며 한참을 휘몰아쳤다. 폭풍이 잦아들고서야 여우는 다시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넷째 도령 앞에 무릎 꿇고 감사를 표했다. 기뻐하는 빛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 밤중에 사라졌고, 그 뒤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넷째 도령은 그녀를 그리워하며 잊지 못했다.
그 후 넷째 도령은 일찍이 벼슬에 나가 출세했고, 훗날 관직이 각학(閣學)에까지 올랐다. 결국 여우는 다가올 화를 피하고자 넷째 도령에게 몸을 의탁했던 거였다. 늙은 여우가 말한 ‘공자가 큰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여우가 벼락을 피한 뒤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걸 보면, 처음부터 마음을 주려 했던 것은 아니고, 결국은 계산된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난암이 말한다.
화를 피하고자 스스로 찾아오더니, 막상 화가 지나가자,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나는 이런 여우는 차마 좋아할 수 없구나.
원문
1 某宗伯致仕家居,以數千金買巨宅一區,宅後樓九楹,空無人居,但貯什物,恆扃鎖,往往見異物。宗伯四子三女,女皆嫁巨室,三子亦婚名門。唯第四子,甫十六,未娶。房中侍女海棠者,年及笄,頗慧麗。適宗伯偶山游未歸,海棠寢至夜半,忽為人舁至樓上,見錦屏繡幕,畫燭華筵,坐客十餘輩,男女相半,履舄交錯,酒炙並行。
2 命海棠起,著衣侑觴。棠面□,以不習對。坐中稚齒女子,豐姿妖冶,鬢髮如云,衣廣袖之襦,把文犀之盞,含笑謂棠曰:「爾非爾家四郎房中婢耶?我與爾家四郎有夙緣,魚軒不久入門,自是一家人,無事靦腆也。」棠倚柱垂頭,不作一語酬答。一靚妝女子,齒尤稚,罵曰:「奴種不堪作養!噤口慍色,欲誰仰妝之眉睫耶?此等人只可侍盥櫛,提箕帚,哪曉歌舞中事!縱使能歌舞,亦不過哞哞作牛鳴,得得效驢跳。三姐耐煩與語!」又一少年男子曰:「我道莫教渠來,三妹執不聽,今何如?轉壞我一新綾襪,污印十個腡文!」滿座大笑,不覺哄堂。前女子有羞愧色,向少年曰:「四哥何太小家相,亦學九妹嘲笑於我耶!海棠雖賤,顏色姿態,且遠勝四嫂。今當稠人廣眾,不肯作倡優伎倆,正見其尊重處,何必相強,且襪一,值錢幾文,亦流於齒頰乎?妹以其初睡,不便令作赤腳婢,故聊為假借,亟當奉償耳,苟有污,妹當代償八□。」少年語塞,避席以謝之曰:「三妹嬌養慣,性情猶昔日耶。聊以相戲,何遽破顏。」使人送之下樓,置故處,棠汗下如雨,心大悸,捶同宿二婢醒,告以故,二婢亦懼。 次日,白諸四郎。四郎白其母。母怖,曰:「此必狐鬼,戒勿至後院!」四郎私叩海棠,心艷女子之美,又聞與己有夙緣之說,頻頻窺伺後院。徘徊間,瞥然一物墜面前,拾視之,則鏤金條脫一隻也。懷之以歸,出示海棠,棠曰:「此狐之物,不可取。」四郎不聽,棠恐為己累,告夫人。夫人素嚴厲,怒曰:「不肖子!豈不聞不聽老人言,淒惶在眼前耶?」呼四郎至,索條脫觀之,柳枝一圈耳。痛訶之,且命行杖。兄嫂畢至,環跪求寬。正紛囂間,聞有女子,厲聲於北窗之下者,曰:「此汝家亢宗子弟,奈何撻辱至此!所謂慈母,固如是乎?」夫人知為狐,遷怒曰:「人家教誨兒子,何與爾狐狸事!」狐曰:「呸!果何與我事!特念四郎年少,故不忍其犯夏楚,不然即打死,又何妨耶?」大郎怒,欲出殺之,聲言覓刀。二郎三郎阻之不令往。狐亦大至,眾口沸騰,飛瓦入房,器物皆碎。夫人懼,不複敢出聲。群狐逾時始寂。
3 於是晝夜乖戾,妖異旋生。二郎乘馬上衙,往往途中失去二鐙。海棠如廁,猝遇紫衣少年,摟之接吻,力拒久之,旋失所在。他侍女所遭尤強暴。大郎新授中書舍人,同僚出資公賀。至日,門庭若市,庖人喧。賓來,絲肉並陳,水陸咸備,乃舉酒獻酬,則酒皆馬溺;下箸款友,則箸皆糞蛆。客大嘩,以為穢弄。大郎悟為狐祟,力白其故。客甚無聊,踵接而散。大郎送客去,恨憤至樓下,跳罵逾時,二弟勸歸。餒甚,妻曰:「廚下饈饌極多,盍取食乎?」乃命婢索點心,啖之頗美,及入喉,覺蠕蠕動,啯啅有聲,即吐哺視之,則盡疥癩小蛙也。遂大嘔,不敢複食。日暮,出飽於市,親族相戒不飲食於其家。
4 大郎有內弟,為侍衛,少年好事者也。來省其姊,話及狐事,侍衛笑曰:「鷙鳥累百,不如一鶚。汝家無膽勇者,何以彈壓妖魅,我今夜住此,必獲寧貼。不然,亦當為彼勍敵。」大郎曰:「汝狀如婦人女子,狐見之且恐有異圖,夫何能鎮靖之有?」侍衛忿然曰:「姑待之,今宵即見功效也!」會夫人歸寧,大郎乃留之。及暮,欣然攜襆被,獨宿樓下。其姊及二郎、三郎諫止之,悉不聽。入夜,初無聲響,益坦率。久之體倦,即就枕。至四更,大郎寤,擁衾起坐,敲火吸煙,聞床下似有鼾聲,異之,撼醒其妻,共起燭之,見一人裸臥床下,身無寸縷,大驚叫有賊,婢媼畢集,禽而撻之,其人驚寤,則侍衛也。眾大駭,侍衛慚愧無地。大郎以衣衣之,叩其故,不解何以於此。昧爽,驅馬而歸,衣服履襪,得諸圊中,污穢不可複著。三娘晝寢,為火燒其衣,撲之愈烈,倉皇脫去,衣固依然無恙也。怒罵不已。自此為患益盛。閨中穢物,懸諸大門,或下體褻衣拋之當路。衣未制而先毀,鏡甫淬而旋昏。 浹數旬,宗伯游山回,夫人備述家中事,議遷居以避之,宗伯曰:「婦人信邪,偏多疑懼,勿複擾攘,自獲寧謐矣!」越半月,上下果相安,咸以為主人福估。宗伯亦頗自詡,曰:「何如?可見見怪不怪,其怪自敗也。」又數日,忽閽人坌息入,曰:「方大人來拜矣。」益少宗伯方公,文名籍甚,且為宗伯鄉試座師,一朝枉駕辱臨,舉家欣感,急索衣冠出迓。拱之升堂,再拜起居。雲坐則坐。方公久坐不去,言語葛藤,又深怪宗伯疏慵,不常存問。宗伯汗流浹背,謝罪不遑。方公未刻入門,酉時進饌,自漏下以迄午夜,語猶刺刺不休,宗伯精耗神昏,百骸俱倦,支持鼓勵,強作笑言。久之不複聞方公聲息,若啞若聾,宗伯罔測其故。頤使大郎侍側潛窺,但見面上茸茸,不辨何物。耳語宗伯,宗伯大疑,即前審諦,烏得為方公,但一芻靈踞右席耳。父子不勝駭異,既而知為狐所弄。乃大笑曰:「騙得好!騙得好!」當時上下無不捧。
5 遲明,宗伯扶筇至樓下,曰:「主人寄聲阿紫:吾聞社鼠不灌,屋鼠不薰,以所憑者,得其地也。況狐之為物,歲久能仙,既能於獸有靈,何必與人為祟?如為炫其幻術,則幻術豈足服人;倘用以驚愚,則驚愚何堪利己?胥出下策,終非上乘。吾今與汝約請畫粉牆為界,樓九楹任汝所為,牆以南主人居之,兩不相侵,言歸於好。如複相擾,則背城借一矣!」樓上無有應答者。遂鳩工堊粉牆,橫亙東西,長逾十丈。一夕,深宵獨坐,見一翁一嫗,貌殊奇古,率男女五七輩同拜於地,謝曰:「公真豁達大度人也!昔者之言,敢不受命。特四公子,將有大厄,願以三女阿□者充公子妾媵,至旦夕呵護,聊以報德,幸公勿棄也。」宗伯問阿□安在,翁指示之。宗伯諦視,穠不短,纖不長,國色無雙,平生所未睹,喜而諾之。問何日親迎,翁媼曰:「旗俗不親迎,且既承慨許,當即令其趨事舅姑,敢議禮乎?」尋辭去,不複為祟。 越三日,宗伯與夫人方坐談,驀見一女子褰簾入,畫衣素面而拜,自稱阿□,奉父母命,來侍四郎。夫人見其慧麗,亦喜而安焉。女事舅姑極婉順,妯娌之間亦甚和好,夫婦異常繾綣,操作甚勤,女紅精妙無匹,與海棠尤相得。會夏日,大雨大雷,女驚惶失措,抱四郎臥帳中,現形為一黑牝狐。四郎無計擺脫,不勝忐忑,霹靂繞屋,奔騰逾時。始定,狐複化為女,跪謝四郎,欣喜之色可掬。夜半遂失所在,後不複來。四郎思之不置。後四郎早貴,官至閣學。是蓋狐欲避劫,故托庇於四郎前。老狐言公子有厄者,妄也。觀其逃劫而喜,去不複來,始有意,終無情,概可知矣。
6 蘭岩曰: 為避劫而自來,甫逃劫而竟去,竊為狐所不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