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사(陳寶祠)
포동(蒲東)의 두양(杜陽)은 자질이 빼어나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나이는 스무 살이 되도록 미혼이었다. 옹정제(雍正) 초년에 그는 외삼촌을 따라 흥안(興安)으로 장사를 나갔다. 외삼촌은 나이가 많아 주로 포목점을 지켰고, 두양에게 물건을 팔도록 하여 진(秦)과 진(晉) 사이를 오갔는데, 1년에 보통 두 차례씩 다녔다.
어느 날, 두양은 포사(褒斜)에서 출발해 잔도(棧道)로 들어섰다. 산길이 험해 고생하던 중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하인을 채어갔다. 두양은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발을 헛디뎌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다. 다행히 낙엽이 깔려 있어 다치지 않았다. 머리를 들어보니 사방의 산이 구름 속에 묻혀 있었고, 나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윽고 날은 저물고 숲은 어두워져 시냇물 소리만 요란했다. 그는 바위에 기대어 신세를 한탄하면서 방황할 뿐 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마침내 천지가 어둑해지고 모든 생명이 잠들었을 즈음, 숲 가장자리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두양은 기뻐하며 우여곡절 끝에 그곳으로 향했다.
다가가 보니 거대한 저택 한 채가 있었다. 대문은 말 네 필이 나란히 들어설 만큼 컸고, 문 곁의 작은 방에는 불빛이 반짝였다. 문을 두드리자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나와서 물었다.
“낭군께서는 어찌하여 이곳에 왔소?”
두양이 사연을 이야기하자, 노인은 놀라며 말했다.
“낭군이 혹시 두양이오?”
두양이 놀라 “그렇소. 어르신은 어찌 제 이름을 아십니까?” 하니, 노인이 말했다.
“우리 주인께서 오래전부터 낭군을 기다리셨소. 잠시 여기 머무시고, 내가 먼저 알리겠소.”
그리고 노파를 불러내 두양을 돌보게 하고는 사라졌다. 얼마 후, 아이 하나가 붉은 비단 등롱을 들고 달려왔다.
“주인께서 기다리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두양은 그를 따라 붉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고리에 짐승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 집은 왕후의 저택처럼 장대했다. 여러 뜰을 지나는데, 모두 장식이 정교했다. 기둥은 붉고 처마는 화려했으며, 종들과 하인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여자들이 떼 지어 몰려와 화장한 얼굴로 몰래 두양을 구경하면서 서로 바짝 붙어 웃으며 속닥속닥 말하고 있었다. 두양은 신분이 비천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더욱 머뭇거렸다. 먼저 욕실로 안내되어 동자가 가루비누를 가져왔다. 목욕을 마치고 새 옷과 모자, 신발을 갈아신은 뒤, 널찍한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주인은 그를 맞아 예를 다해 마주했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주인은 마흔 살쯤 되어 보였다. 붉은 얼굴에 긴 수염, 다섯 빛깔 옷을 입고 있었다. 현재 조정의 복식과는 달랐다. 두양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주인이 정중하게 말했다.
“낭군과 제 딸은 이미 전생의 인연이 있어 오늘 그 인연을 맺으려 하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두양은 마음속으로 당황했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두 번 절하며 “예, 예.”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즉시 혼례를 준비시켰다. 하객들이 도착하고, 궁녀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악기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신부가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다. 곱게 수놓은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옥으로 된 장신구가 찰랑찰랑 울렸다. 건물 안에는 붉은 융단이 깔렸다. 서로 절을 올리는 사이 사향과 난초 향기가 진하게 퍼져 정신이 아득해졌다. 신방에 들어가 서로 술잔을 나누며 눈을 들어 응시하니, 여자의 용모가 세상에 다시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아침노을이 비치는 눈처럼 고와 아름다움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비록 전설 속의 선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지금 눈앞의 이 여인을 보니 그에 버금갈 거라며 속으로 감탄했다.
정을 나눈 뒤, 사이가 각별해졌다. 두양이 그녀의 나이를 묻자 “열여섯이에요”라고 답했다. 성을 묻자 “성은 진(陳)이에요”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관직을 묻자 “벼슬하신 적은 없어요”라고 답했다. 결혼한 지 사흘이 지나자, 수십 집의 친척들이 인사를 왔는데, 모두 부유하고 귀한 가문이었다. 두양은 주인의 생질 봉생(封生)과 특별히 가깝게 지냈다. 여자는 두양에게 종종 경계하며 말했다.
“아버지께 자식이 없어 낭군을 양자로 삼으시려 하세요. 낭군께서는 몸이 약하지만, 봉 오빠는 성미가 거칠어요. 친하게 지내는 건 괜찮지만, 너무 가까이하진 마세요.”
두양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관계를 끊지는 못했다.
여자의 혼례가 한 달이 되던 날, 친척들이 모였고 두양은 봉생을 불러 방에서 술을 마셨다. 날이 더운 탓에, 봉생은 취한 뒤 웃통을 벗고 술을 퍼마셨다. 두양이 말렸다.
“여긴 사적인 장소니, 비록 외사촌 동생이 곁에 없더라도 체면은 지켜야지요. 어찌 이리 함부로 굽니까?” 그러자 봉생은 노하여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는 본래 보잘것없는 하찮은 놈이면서, 나 몰래 조금씩 이득이나 보려 했지. 내가 네가 외로운 처지에 떠도는 걸 불쌍히 여겨, 갈대처럼 하찮은 네가 귀한 여인을 얻게 도왔다. 이 어찌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뿐이겠느냐. 그런데 넌 술 마시고 감히 내게 큰소리치고 망신을 주다니, 나를 바보로 아느냐?”
두양도 화가 나서 좌석 옆에 있던 놋쇠 거울로 봉생을 후려쳤고, 그의 코를 박살 냈다. 봉생은 흥분해 고함을 질렀고, 친척들이 달려와 말렸다. 집안은 큰 소동에 빠졌다. 봉생은 위로받으며 물러났지만, 두양은 여전히 따라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주인은 얼굴이 잿빛이 되어 계단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여자를 불러 달래며 말했다.
“꿀벌이 풀벌레가 되지 못하고, 들닭이 기러기 알을 품을 수 없듯이, 내가 두랑을 사위로 삼은 건 마치 나비에게 기생충을 붙인 셈이었구나. 뜻밖에도 봉생(封甥)의 노여움을 사서, 재앙이 금방 닥쳐올 판이다. 당장 그를 내보내야 한다. 지체할 수 없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울며 말을 잇지 못했다. 두양은 이를 듣고 슬프고 분한 나머지 바닥에 엎드려 말했다.
“어르신께서 어찌 이토록 급히 저를 쫓아내려 하십니까. 봉생은 그저 우둔한 자일 뿐입니다. 그의 행동은 거친 장사치나 다름없습니다. 비록 나와 이 집안은 얇은 인연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마음속 깊이 진실한 정성과 도리를 따르고자 했습니다. 저 두양은 비록 부족하나, 그와 맞서 싸울 수는 있습니다. 어르신께 걱정을 끼치지 않겠습니다.”
주인은 쓸쓸하게 말했다.
“봉생은 오래전부터 이 산에 살았고, 두랑은 이곳에 발붙인 지 얼마 안 되었네. 나는 봉생도, 내 자식도, 집안사람들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네. 다만 두랑이 홀로 남아 외로운 산중에 갇히게 될까 염려되는 것뿐이라네. 차라리 이 골짜기를 떠나 형제들과 재회하게. 하늘의 뜻이니 더 미련 두지 말고.”
두양은 크게 울며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못했고, 여자도 소리를 내어 울었다. 주인은 시녀 둘을 시켜 두양을 문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했다. 그 순간, 두 다리가 땅에서 떠오르더니 어느새 허공을 날아올랐다. 눈 깜짝할 새에 그는 다시 잔각(棧閣, 산길 숙소) 위에 내려서 있었다. 시녀 둘은 꿩으로 변해 날아갔다. 두양은 얼떨떨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근처에 진보사(陳寶祠)가 있었는데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그는 그 안에서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위패를 올려다보니 전에 보았던 인물과 똑같았다. 그는 감동에 겨워 재배하고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다음 날, 두양은 거지꼴로 흥안으로 돌아왔다. 외삼촌은 깜짝 놀라 이유를 캐물었다.두양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학식이 넓은 사람이었던 외삼촌은 탄식하며 말했다.
“봉생은 곧 너의 하인을 채 간 호랑이란다. 『광이기(廣異記)』에도 봉사군(封使君)1 이야기가 있으니, 그 고사를 따라 성씨를 봉(封)이라 한 거다. 또 너도 기억할 거다. 네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나를 따라 봉현 남쪽으로 갔다가 까투리를 잡은 일이 있었지. 내가 꿩을 잡아 삶으려 하자, 네가 그 울음소리를 불쌍히 여겨 몰래 풀어주었잖느냐. 그래서 전생의 인연이 있는 것이란다. 옛사람은 이런 인연을 얻어 제후가 되었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저 부유해지는 것만으로도 족하단다.”
이후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자, 두양은 장사를 계속하여 수년에 걸쳐 큰돈을 모았다. 훗날 다시 그 골짜기를 지나며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진보사를 다시 지어 그 하인의 혼도 함께 모셔 제사를 올렸다.
난암(蘭巖)이 말한다.
짐승조차 옛 은혜를 잊지 않는데, 어찌 사람이 꿩의 뜻을 모르는가?
- 《태평어람(太平御览)》 권892에 실린 남조 양(梁)의 임방(任昉)이 쓴 《술이기(述異記)》의 내용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나라 선성군(宣城郡)의 태수였던 봉소(封邵)가 어느 날 갑자기 호랑이로 변해 백성을 잡아먹었다. 백성들이 ‘봉사군(封使君)!’이라 부르자, 그는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 ‘봉사군이 되지 마라. 살아서는 백성을 다스리지 않고, 죽어서는 백성을 잡아먹는다.’” 이후 중국의 시문에서는 ‘봉사군’을 호랑이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했다. 이 편에서 작자는 《술이기(述異記)》를 《광이기(廣異記)》로 잘못 인용했다. ↩︎